인물 문의

  작성자  한자박사  전자우편  doctor@hanjadoc.com  등록일  200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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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자박사 관리자입니다.

여말선초의 문인입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를 참조하시고 그 시는 {동문선}에 실려있는 시입니다.

1352(공민왕 1)∼1432(세종 14).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주도(周道), 호는 기우자(騎牛子) · 백암거사(白巖居士) · 일가도인(一可道人)이다. 충주 목사 이천백(李天白)의 아들이며,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71년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 수찬이 되었다. 1386년 탐라가 자주 반란을 일으키므로 전의 부정으로 탐라에 가서 성주 고신걸(高臣傑)의 아들 고봉례(高鳳禮)를 볼모로 데리고 왔다. 1389년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사전(私田)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 해에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彛) · 이초(李初)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이색(李穡)과 함께 청주옥에 갇혔다가 수재(水災)로 석방되었다. 그 뒤 경연 참찬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1392년 이조 판서로 정몽주(鄭夢周)를 살해한 조영규(趙英珪)를 탄핵했다. 1393년 고려의 사관이었을 때 이성계를 무서(誣書)한 죄가 있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가산이 적몰되고 울진에 귀양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태종 5년(1405)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으며 계품사(啓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해 9월 22일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가 되었고, 1407년 형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고려가 멸망하자 예천동(禮泉洞)에 은거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차연자루운(次燕子樓韻)

행장 독의루를 읊을 줄 알았거니 / 解道行藏獨倚樓
초당의 풍경과 운치가 참으로 유유하다 / 草堂風韻儘悠悠
마침내 호수와 산이 소방한 나를 용납하건만 / 湖山終得容疏放
어느새 눈이 머리에 가득찬 것 어찌하리 / 爭奈飄然雪滿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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