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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편 - 景沙亭(경사정) -

 

소재지 : 경북 군위군 우보면 선곡리 942
건립연대 : 1717년() 건립
건립자 또는 연고자 : 오영연
건물의 입지 : 丘陵形
건물의 형태 : 단층의 평집
지붕 : 팔작지붕
건물의 모양 : 四角形
누정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칸수 : 정면 - 3칸, 측면 - 1칸
건물 보존 상태 : 양호
문화재 지정 현황 :

 

 權相圭 作, 景沙亭記

亭以景沙名以景慕錦沙先生吳公也公之高風直道可以社享而士林未遑法言宏文可以傳世而鬱攸灾之曠然無寓慕之地仁孫所以愓焉起慕建築一字以觀瞻而羹墻之者誠孝思之不容己者也於乎旣爲景慕而作則粗述其大節特行揭之楣扁使讀者有所起敬是後人之責今於記文之托豈忍以老弊辭諸盖公生錦山名節之家而際成廟郅隆之世志氣高潔文章炳蔚人皆擬之以輔袞五色之線而旋値昏朝讜議不行峨峨豸帽竟作色擧之冥鴻逮夫仁廟改玉彙征朝列內而薇垣玉署之衡外而使命賑荒之職可以啓沃聖心對揚王休而又値己卯小來萋斐成錦眼見善類艾刈慨然歸隱以鳳沙一區爲安身立命之地而歌咏先王詔敎來學囂然而終世盖其有器無命不得大用於世固爲慨惜而能知時識幾禮進而義退霽行而潦止者寔足僞君子處世之範則也世之登是亭者有以想仰公心法之貞出處之宜則知所以立朝矣亦知所以遯世矣是亭之有關於世敎豈亶爲仁孫景慕之地己哉至若堂室間架之制山川形勝之美未囑也不敢記想登覽者有以自得之矣 黃鼠流火節 永嘉 權相圭 記


정자를 경사로서 이름붙인 것은 금사선생이신 오 공을 경모한다는 것이다. 공의 고풍과 직도는 가히 향사에서 제향하여야 하나 사림에서 겨를이 없었 으며 법언이나 방대한 문장력도 가히 세상에 전할 만하였지만 화재를 당하 였으며, 오래도록 우묘할 지역이 없어서 잉손들이 슬프게 사모함이 일어나던 바에 집 한 채를 지어 첨앙하여 보며 우모하는 것은 잉손들의 성과 효를 생 각하여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바이다. 아! 이미 경모하기 위하여 지었다면 그 대절과 특행을 조술하여 정자의 머 리에 걸고, 읽는 자들로 하여금 공경심이 일어날 바가 있게 하는 것은 이것 이 후인들의 책임이니, 내가 기문의 부탁을 받고서 어찌 차마 노폐하였다고 사양하리오. 대개 공께서는 금산의 이름난 충절의 가문에서 태어나 그 즈음 성종의 높은 덕치를 이루는 세상에 즈음하여 뜻이 고결하고 문장은 빛나서 사람들이 모두 임금님을 보필할 시하가 되리라고 기대하였으나, 갑자기 혼조 (연산군)를 만나 곧은 말이 행하여지지 아니하자 높은 홀과 관모로 마침내 어두운 눈치를 채고 그만두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여러 선비들이 조정으로 나 아갈 때 벼슬을 받아 안으로는 사간과 홍문관의 직이 있었고 밖으로는 흉년 을 구휼하라는 직책의 명을 받았으니, 가히 성심을 기름지게 계도하여 왕의 아름다움을 의양하려 하였으나, 또 다시 기묘사화(1519)를 만나 소인배들이 모함을 꾸며 선한 사류들이 목을 베임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는, 슬픈 듯이 돌아와서 은거하여 봉사의 한 구역으로서 몸을 편히하고 명을 세울 지 역으로 삼아, 선왕을 노래하고 읊으며 내학을 소칙하고 가르치며 의기양양하 게 자득하며 지내시다가 세상을 마치셨으니, 대개 그 기량은 있으나 운명이 없어서 크게 세상에 쓰임을 얻지 못하게 되었음은 진실로 슬프고 애석하지 만, 능히 때를 알고 낌새를 알아 예로서 벼슬에 나아가고 의로서 벼슬에 물 러났으며 날씨가 개이면 행하고 길에 물이 고였으면 그쳤던 것은 이것이 족 히 군자가 처세하는 규범이며 법칙이었다. 세상에서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공의 심법의 곧음과 출처의 마땅함을 상상하여 앙모하는 바가 있다면, 조정 에서는 바를 알 것이며, 또한 세상에 은둔하는 바도 알 것이니, 이 경사정이 세상의 교화에 관계가 있음이 어찌 오로지 어진 자손들만이 경모하는 지역 이 될 뿐이겠는가? 가령 당실의 규모나, 산천의 형태의 아름다움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감히 기록하지 못하며 상상컨대, 올라서 관람하시는 자는 저절로 터득함이 있으리라 여겨지는구나. 술자(1948)년 류화절(7월)에, 안동 권상규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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