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건축 : 1685년(숙종
11) 思義祠로 창건, 1868년(고종 5) 훼철, 1908년 일부 복원, 임하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이건 배향인물 : 김진(金璡),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 배향일: 不享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호(1985.8.5) 소유자 : 金時雨 『嶠南誌』:
在郡東四十里肅宗乙丑建享進士金璡從享牧使金克一察訪金守一生員金明一文忠公金誠一司成金復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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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泗濱書院은 靑溪
金璡(1500-1580) 선생과 그의 다섯 자제인 藥峯 金克一(1522-1585)․龜峯 金守一(1528-1583)․雲巖
金明一(1534-1570)․鶴峯 金誠一(1538-1593)․南嶽 金復一(1541-1591) 형제의 遺德을 追慕하고 後學을 양성하기 위하여 숙종
11년(1685)에 士林과 자손들의 公議로 건립하였다. 廟號는 ‘景德祠’라 했다. 1709년(숙종 35) 동구 밖 泗水 가로 이건하여
‘泗濱書院’이라 하였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1882년(고종 19) 사림과 본손들에 의해 복설되어 講堂과 廚舍만 남아있다.
講堂은 五樑架構의 瓦家 박공집으로 되어있고 廚舍는 ‘ㅁ’자형주택으로 안동지방 士林들의 건축양식인 傳統韓瓦家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은 임하댐 건설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 621에서 1987년 현 위치로 移建하였다. 【참고 1】『泗濱志』에 泗濱書院의 奉安文과 常享文이
실려 있음. 【참고 2】마을 뒤편 임하댐 보조댐 제방 바로 아래에 있다. 뒤편에는 靑溪 선생의 묘소를 돌보기 위해 지은 景山精舍와 大朴
선생의 묘소를 돌보기 위해 지은 松石齋舍가 있다. 우측에는 서원에 딸린 齋舍가 있다. 『안동군 지정문화재
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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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安泗濱影堂而謁舊廟
權安旣久 임시로 봉안한지 이미 오래라 有惕輿衷 모두들 마음이 송구했는데 新廟才成 이제 새 사당 이루어서 敢請移奉 감히 옮겨 봉안함 청하나이다 移安泗濱影堂而謁新廟
維玆廟香 이 사당에서 향사 올린 지 餘二十年 이제 이십년인데 始就其便 처음에는 편리함을 취하여서 不暇擇地 길지를 택할 여유 없었는데 體勢褊迫 체계와 형세 좁아서 艱苟實多 어려움 진실로 많았습니다 儒林所歉 儒林들도 맘에 차 하지 않았는데 神豈用宇 혼령께서 어찌 이를 쓰시겠습니까 載謨移創 이에 옮겨 세우려 于泗之濱 泗水 가에 준비했습니다 水鏡山屛 물은 거울같고 산은 병풍같으며 外窈中廓 밖으로는 조용하고 널직하여서 允宜妥侑 진실로 봉안하기에 마땅하며 亦合藏修 머물러 학문을 닦기 적당합니다 遠邇齊聲 모두가 한 목소리인지라 於焉經紀 이에 경영하여 時月未幾 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工役粗完 일을 대강 마치었는데 其位孔陽 그 자리 밝고 밝으며 其宮有侐 그 궁실은 고요합니다 涓辰稽式 길일 택해 법식 따라서 庸奠神樓 이에 神樓에 올리나니 牲醴旣嘉 희생의 고기와 술 아름답고 衿珮有儼 선비들은 엄숙합니다 於千萬歲 천만년토록 영원히 庶格以寧 이곳에서 편안히 흠향하소서 泗濱影堂移建上樑文
山阿築宮, 久講合享之盛禮, 水滸胥宇, 載營移建之新規, 輪奐增輝, 林泉改觀. 爽惟名家積慶之胎孕, 實賴勝地淑氣之扶輿,
心得力行, 太翁之純深訓子, 目擩耳梁, 長公之文學承家, 辨人心道心體用之差, 龜峯得師門之印可, 討今文古文精深之蘊, 雲巖荷錦溪之硏磨,
文忠之立德立功立言, 光日月而垂星斗, 岳老之治心治家治郡, 貫顯微而質鬼神, 有是父有是兒, 奚取蘇氏之三秀, 難爲兄難爲弟, 不但竇家之五龍.
誰知間氣之生賢, 有此一體之合德, 靈春寶樹, 俱擅瑞世之英華, 德薰書香, 永播飮人之膏馥, 聞所聞而見所見, 擧切瞻依, 賢其賢而親其親, 爰思尸祝.
拓松楸數畝之僻壤, 奉蘋藻一堂之明禋, 第緣經始之欠詳, 未免偪側而難久, 雖衣冠所藏之密邇, 陟降非宜, 而衿佩攸芋之單褊, 遷改用急. 吉地非遠,
只在泗水之濱, 靈源不窮, 遙匯洛河之派, 溪山洞壑, 尙帶杖屨之餘, 風月煙雲, 幾寓吟弄之淸興. 體勢環繞, 窈而深郭其有容, 眼界寬閒, 行若窮忽又無際,
考諸人謀則吉, 求之神道而安, 役焉以時, 士殫誠而工殫巧, 成之不日, 材效良而器效精, 杳爾神皐. 占淸絶於物外, 巍然華構, 見突兀於眼前, 敢綴蕪辭,
用伸善禱.
抛樑東 岐山曉望瑞光紅 千仞高岡鳴鳳去 朝陽猶自照梧桐
抛樑西 雲際松岑落照低
回首脩門渺天末 山榛空憶美人兮
抛樑南 藥山巖洞有仙菴 記得寫眞留寄處 江湖淸趣飽曾諳
抛樑北 飛鶴層標撑斗極 咫尺佳城在此中 英靈體魄長無隔
抛樑上 星漢昭回森列象
人心安得似辰居 寂感無邊好存養
抛樑下 混混江原流不舍 媚學諸君好反觀 工夫接續無晨夜
伏願上樑之後, 潛扶道胍, 丕振儒風, 操縵安絃, 誦詩書而習禮樂, 升堂入室, 造高明而究精微, 敎鐸長鳴, 學裘善述.
산
언덕에 서원을 지어 함께 제향하는 예를 올린 지 오래라 물가에 터를 잡아서 새 규모로 옮겨 세울 것을 경영 하니 그 모습 밝게 빛나고 林泉은
새롭게 되었다. 오직 名家에 경사가 쌓여 잉태됨은 진실로 좋은 땅의 맑은 기운이 도와서이다. 마음으로 얻고 힘써 행함은 太翁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음이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長公(약봉공)의 둘도 없이 뛰어난 문학이다. 人心, 道心, 體用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에 대해서는 龜峯公이
스승의 인정을 얻었고, 今文 古文의 精微한 쌓임을 논하는 것은 雲岩公이 錦溪公의 칭찬을 받았다. 文忠公의 立德 立功 立言은 해와 달처럼 빛나며
북두성처럼 드리웠고, 嶽老公의 治心 治家 治郡은 드러난 것과 은미한 것을 꿰뚫어서 귀신에게도 질정할 정도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있었으니
어찌 蘇氏가 三秀를 얻음이 아니며, 형이 되기도 어렵고 동생이 되기도 어렵다고 한 것이 어찌 다만 竇家의 五龍일 뿐이랴. 세상의 뛰어난 기운으로
賢人이 나서 이와 같이 하나가 되는 合德이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 신령한 봄풀 보배로운 나무가 함께 상서로운 시대의 영화를 누렸고, 덕스러운
향내 책의 향기는 영원토록 사람들에게 살진 향기를 전파할 것이다. 들은 것을 듣고 본 것을 보아서 모두가 우러러 의지하였으며,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고 친한 이를 친하게 여겨서 이에 제사할 것을 생각하였다. 先山 몇 무의 후미진 땅을 개간하여 제수를 받들어 사당에 제사를 올린다.
다만 처음의 규 모가 상세하지 못한 흠이 있어서 치우쳐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비록 衣冠을 정리한 곳이 가까우나 혼령께서 오르내리시기에는
마땅하지 않고 선비들이 거처할 곳이 좁아서 옳겨 고 치는 것이 매우 급하였다. 吉地를 찾으니 먼 곳에 있지 않고 다만 泗水의 가에 있었으니 영
험한 근원 끝이 없고 멀리 낙동강 줄기가 이어졌다. 시내와 산과 골짜기는 아직도 지팡이 짚고 다니시던 남은 흔적을 두르고 있고 바람과 달과
안개와 구름은 읊으며 다니시던 맑은 흥취를 머금고 있다. 地勢는 사방이 둘러싸여 조용하고도 깊으며 널찍하고 넉넉하며 시야가 넓게 트여서 둘러봐도
마치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살펴서 좋고, 神道를 구하여도 편안하였다. 때 맞추어 일을 하니 선비들은 정성을 다하고
기술자들은 기술 을 다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하였다. 재목도 진실로 좋고 그릇도 진실로 정성되니 아득 한 신의 언덕은 物外의 맑은 경치를
차지하였고 높고도 화려한 집은 우뚝 눈앞에 드러났다. 감히 번다한 말로 축원의 뜻을 쓰노라.
어기야 동쪽에 떡 던지니
岐山의 새벽 瑞光에 빛나도다 천 길 높은 산 봉황이 울고 가는데 아침 볕 오히려 오동나무에 비치도다
어기야
서쪽에 떡 던지니 구름 어귀 솔 언덕에 지는 해 낮구나 고개 돌려 높은 문 보니 하늘 끝 아득하고 산 개암나무 괜시리
미인을 생각하게 하도다
어기야 남쪽에 떡 던지니 藥山 바위 골짝에 仙庵이 있도다 眞影그려 보관하던 곳이라
江湖의 맑은 정취 진작부터 알던 바라
어기야 북쪽에 떡 던지니 飛鶴山 높아 북두성을 받치도다 지척에 묘소가
이 가운데 있어서 신령한 혼령은 體魄이 길이 평안하리
어기야 위쪽에 떡 던지니 은하수 밝게 늘어서 있도다
사람 맘은 어찌 북극성 향하듯 하는가 고요한 느낌 끝없이 보존하고 기르셔서라
어기야 아래쪽에 떡 던지니
넘실넘실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르도다 사랑하는 제군들 돌아봄이 좋으니 쉼 없이 공부를 계속 해야 하리라
엎드려
바라기는 들보를 올린 뒤에는 학문에 침잠하여 붙들어서 儒風을 떨치며, 거문고 줄 을 골라서 시서를 읊조리고, 예악을 익히기를 원하노라. 堂室에
오르며 高明한 곳에 나아가 며 精微한 것을 궁구하여 교화의 소리 길이 울리고 학문이 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泗濱影堂常享文
心全懿德 마음으로 아름다운 덕 온전히 하고 功著斯文 공은 사문에 드러났도다 餘烈遺風 남기신 가르침 여전히 성대하니 百世矜式 영원토록 우리 모범 되시도다
景德祠重建上樑文
有擧無廢, 百歲之尸祝長存, 仍舊改新, 六架之倉斲重奐, 孔陽厥位, 有侐斯宮. 伏惟靑溪金先生, 湖海逸民,
光嶽間氣, 道義模範, 薰鄙俗而善良, 文學風流, 振儒敎而興起, 雖韜光一世, 讓尊庇之大猷, 而歸成五郞, 佐鴻熙之景運. 自立庭詩禮, 已積坏壅之功,
使退門髦譽, 咸推鞾鄂之美. 惟藥峰先生, 邁世節行, 鳴國文章, 透過名關, 不易展惠之介, 樂爲州郡, 每興文翁之治. 惟龜峰先生,
英明稟資, 精邃心學, 盡喪祭戚易之節, 取衷禮家, 明人道理欲之分, 承許函席. 惟雲巖先生, 姿挺近道, 信篤從師, 守眞訣而進不可量,
葛翁興假年之歎, 仰前脩而期與共勉, 錦老有托契之詞. 惟鶴峯先生, 純剛德全, 動天行卓, 伏大節於夷險, 勳佐中興, 接正脈於明誠, 師宗百世.
惟南嶽先生, 正直持養, 眞實踐知, 撫字洽恩, 累驗學道之愛, 牌拂主敎, 克廣成物之仁. 總惟是父是子之賢, 亦粤難兄難弟之懿,
伊始毓德而啓慶, 道肥家門, 于後聯武而振華, 光達邦國, 里爲冠蓋, 孰非聲明之所宣, 鄕稱魯鄒, 亶由輩出之爲盛, 同好懿德, 士林之景慕旣深, 可祭先生,
學社之崇報何忘. 故倣三徐四陳之例, 乃擧一堂兩腏之儀, 始爲墟墓興思, 密接寒泉之舍, 中以爽塏通望, 移築淸泗之厓. 反千古之英靈, 江山之扶興尙在,
典一洞之風敎, 冠紳之矜式不亡, 何年肇營, 蓋屬公羊之所聞, 仍世嗣葺, 實追考翼之旣勤, 顧由竪建之累閱春秋. 乃見結構之頓異今古, 若牽架苟度,
深懼靜謐之未寧, 非展拓稍開, 復嫌拓旋之有窘, 遂發永遠之寅念, 爰擧創始之宏圖, 排舊礎而闢舊壇, 不易其砌築, 用新材而就新架, 所移者尺尋, 椽輪石松,
實符植林之庇蔭, 杗取陶社, 堪仰窮宙之棟樑, 工殫巧士殫誠, 以親賢之愈久. 辰諏良日諏吉, 儘龜筮之偕從, 素樸爲堅, 匪比橧巢太質, 丹雘加采,
倏與川嶽增光, 于焉神樓之永安, 庶幾精禋之益謹, 重惟世道升降, 與時運而往來, 蓋觀物理毁成, 隨人事而久脆, 一時鼎革, 已兆斯文之晦明, 白怯桑溟,
又幾吾道之興廢, 妥位崇享, 幸勿替於斯今, 補敝扶顚, 更有望於終古. 聊陳善頌, 用助脩扛.
兒郞偉抛樑東 岐嶽曈曨旭日紅
除是朝陽鳴不聞 願移梧植待芃芃
抛樑南 藥山高拱護仙庵 當年眞影留龕裏 憑慕題詩獻壽男
抛樑西 襄嶽花峰近遠齊 百里巍峨相望際 白雲一抹傅巖樓
抛樑北 十里匡廬連秀色
下有宮牆開丈函 想隨誾侃同游息
抛樑上 泰宇天光開爽朗 昭明陟降在洋洋 斗南天古縣瞻仰
抛樑下 九曲長河流不舍 會到洛流歸正宗 是爲河洛淵源瀉
伏願上樑之後, 嶽神護安, 地道佐吉,
攸除風雨, 永綏肅淸之樓, 有踐豆籩, 益修孚顒之蔍, 無斁千年香火, 有依一邦衣冠.
시행함은 있고 없앰은 없어서 영원토록 제향함이 길이
남아 있다. 옛 것을 따라 새롭게 하니 여섯 시렁 깎은 것 더욱 빛나고, 이 자리 더욱 빛나며 이 宮은 고요하다. 우리 靑溪 金先生은
시골의 숨은 인재로 삼광오악같은 세상의 뛰어난 인재이다. 道義의 模範을 보여 속된 것을 훈도하여 진실된 것으로 만들었다. 文學과 남긴 가르침으로
儒敎를 드날려 일으켰다. 비록 세상에서 빛을 감추고 높임 받는 커다란 꾀를 사양했으나, 돌아와 다섯 아들 이루며 크고 빛난 운수를 도왔다.
가정에서부터 詩禮를 익혀 이미 북돋은 공을 쌓았으며, 퇴계 문하의 제자들이 모두 그 아름다움을 추대하였다. 우리 藥峰선생은 온 세상의
節行이고 나라를 울리는 文章이다. 이름 있는 관직을 두루 거쳤 으나 굳은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州郡을 다스리는 것을 즐겨하여 매번 文翁의
다스림을 일 으켰다. 우리 龜峰선생은 빼어난 자질을 타고나서 心學에 정밀히 빠져들어 喪·祭 때 슬퍼하는 절개 를 다하여 禮家의 정성스런
마음을 취하였으며, 人心·道心과 理欲의 구분을 밝혀서 스승께 인정을 받았다. 우리 雲巖선생은 자질이 道에 가까워 스승을 도타이 믿고
따라서 眞訣을 지켜 나아감을 이 루다 셀 수 없어서, 葛翁이 남은 해가 짧다고 한탄할 정도였고, 선배를 우러러 함께 힘씀을 기약하니 錦老가
인정하는 말을 내었다. 우리 鶴峯선생은 순수하고 강직하며 덕이 온전하여 하늘을 뒤흔들 행실 탁월하였다. 세상이 평탄할 때나 어지러울 때나
큰 절개를 지녀 나라를 일으키는 데에 공이 있었으며 明誠의 바 른 맥을 이어받았으니 영원한 스승이 되었다. 우리 南嶽선생은 바르고 곧으며
소양을 잘 지녀 진실로 앎을 실천하였다. 어루만지고 사랑 하는 흡족한 은혜로 자주 도를 배우는 일을 사랑하였음을 징험하였으며, 학교를 번창하게
하여 만물을 이루어지는 어짊을 크게 넓혔다. 이 모두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의 어짊이고 또한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다고 하기 어려
운 아름다움이로다. 처음에는 덕을 길러서 慶事를 열어 가문에 道가 살졌다가 나중에는 굳 셈을 연이어 아름다움을 떨쳐서 고장과 나라에 빛이
도달하였다. 마을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줄을 이으니 어떤 것인들 명성이 펼쳐진 바가 아닌가. 이 고장을 공자의 고장, 즉 鄒魯之鄕 하니 진실로
이들께서 성대히 나온 까닭이로다. 함께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여 士林의 흠모 함이 이미 깊어서 선생을 제사할 만 하니 學社가 높여 보답함을 어찌
잊겠는가. 이런 까닭 에 三徐四陳의 예를 본떠 이에 한 堂室에서 두 번 향사를 올린다. 처음에는 묘소가 있는 터 에서 사모함을 일으켜 그 가까운
齋舍에서 하다가 중간에는 탁 뜨인 곳으로 맑은 泗水가로 옮겨지었다. 천고의 혼령 되짚어 보니 강산의 떠받침 아직 그대로이고, 한 골짜기의 남은
가르침 본받을 만 하니 선비들의 모범은 없어지지 않았다. 어느 해에 처음 일을 시작하였는 가. 아마도 公羊의 들은 것에 의해서로다. 이에 대를
이어서 지붕을 이음은 진실로 조상들 이 이미 이룬 수고를 따름이다. 다만 건축한지 여러 해가 지났기 때문에 집을 이룬 방식이 옛날과 지금이
다름을 발견하였다. 만약 건물 제도를 구차하게 한다면 고요히 지내기에 좋 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고, 더 넓히지 않으면 다시 군색함이 있을까
두려워 마침내 영원한 계책을 생각하여 이에 새로 만드는 큰 시도를 하였다. 옛 주춧돌을 밀치고 옛 단을 열면서 도 쌓아놓은 섬돌은 바꾸지
않으면서 새 재목을 써서 새로 집을 엮으니 옮겨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서까래는 石松에서 실어오니 진실로 숲을 조성한 음덕에 절묘히
들어맞으며, 들보는 陶社에서 취하니 온 세상에 우뚝한 대들보가 되겠다. 기술자를 기술을 다하고 선비 는 정성을 다한 것은 先賢을 친히 한 것이
오래이기 때문이다. 길일을 가리니 거북점과 시 초점이 모두 들어맞았다. 소박하고도 견고하니 橧巢에 비해 크게 질박하지도 않고 단청으로 채색하니
山川과 더불어 더욱 빛나도다. 신령께서 이곳에서 영원히 편안하시고 정성스런 제 향이 더욱 삼가 이루어질 것이다. 여러 번 생각해도 세상의
도가 오르내리는 것은 시대의 운수와 함께 왕래하는 것이니 대개 보이는 사물의 이치가 훼손되고 이루어짐은 사람의 일에 따라 오래되거나 약하게 되는
것이 다. 한 때의 鼎革은 이미 斯文의 어둡거나 밝음의 징조였다. 桑田碧海 될 만큼의 오랜 세월 동안 또 우리 도의 흥함과 폐함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마땅한 곳에 신위를 봉안하고 높여 행사하니 이제부터는 폐함이 없고, 무너지고 바뀐 것은 보수하여 끝까지 영원하기를 바란 다. 애오라지
송축의 말을 늘어놓아 들보를 올리는 일에 쓰노라.
어기야 동쪽에 떡 던지니 아기산은 환히 해가 붉구나 朝陽에 새
우는 소리 들리지 않으니 오동나무 옮겨 심어 울창하기 기다리리
어기야 남쪽에 떡 던지니 藥山 높아 仙庵을
보호하는구나 그 때 眞影이 감실 속에 있으니 시를 지어 올리던 사내를 생각하노나
어기야 서쪽에 떡 던지니
襄嶽 花峰 원근에 나란하도다 백 리 높은 봉우리 서로 바라보이니 흰 구름 한 무더기 傅巖樓에 있도다
어기야
북쪽에 떡 던지니 십 리에 匡廬山 빼어난 자태라 아래로 宮牆이 있어 배움터 여니 온화하고 강직함 생각하며 따르네
어기야 위쪽에 떡 던지니 큰 하늘 빛 상쾌히 열려 있도다 밝은 기운 오르내림 드넓은데 북두성 남쪽에 영원토록
우러르도다
어기야 아래쪽에 떡 던지니 九曲 긴 강물 쉬지 않고 흐르도다 낙동강을 만나 바다로 돌아가니 이것이
河洛의 연원으로 흐름이로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에는 산악 신령이 보호하시고 땅의 신께서도 도와주셔서 바람과 비 를 없애어
영원토록 엄숙하고 맑은 누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기를 차려서 공경하는 정성 더욱 더하여, 영원토록 향사하며 온 고장 선비들의 의탁할 바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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