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안동시 일직면 송리동 혹은 안동군 남선면 노림리 (현재 옛 터만 남음) 건축 : 1653년(효종
4) 창건, 1868년(고종 5) 훼철 배향인물 : 남치리(南致利) 배향일: 不享 ≪嶠南誌≫ : 在郡南十五里仁祖己丑建享賁趾南致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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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649년(인조
27) 士林의 공의로 賁趾 南致利(1543-1580)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설되지
못했다. 현재는 舊址에 석축만 남아 있다. 서원에 모셨던 위패는 선생의 묘소 바로 아래에 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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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林書院上樑文
仁聞遽隕於早齡, 方深短命之慟, 公論未泯於百歲, 式擧重欄之儀, 道所存焉, 禮則然矣. 恭惟賁趾南先生, 英陽纘冑,
古昌毓靈, 睿視英襟, 數千里山河間氣, 周情孔思, 五百年聖賢源流, 取舍識熊魚, 絶意於倘來軒冕, 義理若芻豢, 留心於旣往訓謀, 求之有餘師,
回也得善誘, 一曲退陶之榭, 六藝游夏之徒, 居喪致其哀, 少連大連之堪比, 素位不願外, 處貧樂貧之自如, 食求飽行赴家, 縱有賴於皐比, 出乎類拔于萃,
豈無得於本源. 方屬玉成之自天, 不憂斯文之墜地, 問學不怠於往復, 論辨日趨乎高明, 守之固詣之精, 庶幾及其至也. 賦則粹養則嗇, 可惜未見止焉,
德薰晉鄙之居, 禮相奠楹之席, 珍重厓翁之墓誌, 推挽栢老之哀辭. 惟玆魯林之秘區, 實是建劒之遺址, 縱音容之已遠, 而謦欬之難忘, 幾年多士之經營,
此日詢謀之協贊, 川源潔淨, 似聞沂水之歌, 嶽峙雍容, 若接農山之對, 寄景慕於異日, 亶始于玆, 奉禴祀於後辰, 爰得我所式闡舊域載揚遺塵, 挹佳氣於風烟,
想貞姿於松栢, 士爭釋經而敦事, 人思竭智而獻功, 輪焉奐焉, 瞻廟貌之斯翼, 鋸彼斧彼, 喜輸巧之已呈, 景化若親見之, 小子宜有造也. 恭陳短唱,
助擧脩樑.
兒郞偉抛樑東 入望藥山蒼翠濃 髣髴至人留氣像 葱籠幽趣四時同
兒郞偉抛樑南
特立葛蘿雲漢參 多少世紛渾不管 千年磅礴護眞庵
兒郞偉抛樑西 鶴駕巍巍天與齊 道契當年曾結此
也應英爽好攜提
兒郞偉抛樑北 淸洛溶溶流不極 濤波遠接濯纓潭 圅丈眞源深莫測
兒郞偉抛樑上
半天星月光輝亮 仰思俯讀想平生 十分淸高明素尙
兒郞偉抛樑下 花竹名園秀而野 從今香火自年年
佇見靑衿坌洛社
伏願上樑之後, 籩豆有踐, 芬苾亶時, 蔚乎髦士之興, 藹然文風之盛, 里爲鄒魯, 戶習弦歌, 修諸己而及人,
行賁白屋, 重其內而輕外, 道旺靑邱.
仁을 들음은 갑자가 이른 나이에 떨어지지 않는 까닭에 바야흐로 일찍 돌아가심을 슬퍼함이
깊어져서 公論이 백세에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廟祠를 올리는 예를 행한다. 도가 있는 곳이니 예도 그러한 것이다. 오직 우리 賁趾 南先生은
빼어나게 드러난 혈통을 이어서 예부터 뛰어난 영기가 왕성하여 그 지혜로움이 선비들 가운데 드러났다. 수천 리 되는 산하의 빼어난 기운으로 정이
두루 미치고 생각이 넓었으며 오백년 성현의 근원으로 熊掌과 물고기를 취사선택할 줄 알았다. 벼슬자리에 서성거림에서 생각을 끊고 義理를 양식으로
여겼다. 이미 가르침을 받은 것에 마음을 두고 다른 곳의 스승 삼을 이들을 구하다가 좋은 권유를 얻어 한 골짜기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六藝를
배운 子游나 子夏같은 무리가 되었다. 喪을 당하여서는 그 슬픔을 다하여 가까운 친척이나 먼 친척이나 이에 맞게 감당하였다. 평소 지위는 마음에
두지 않고 가난함에 처하여서도 가난함을 즐거워하기를 변함없이 하였고 배부르게 먹을 때에도 걸어서 집에 다니면서 스승에게 의뢰하여 무리 중에서도
빼어났으니 어찌 근본을 얻음이 없겠는가. 바야흐로 屬玉이 스스로 하늘로 감을 이루듯 斯文이 땅에 떨어짐을 걱정하지 않고, 배운 것을 물으며
오가는 것에 게으르지 않았고 論辨하면서 날마다 高明한 이에게 나아갔다. 굳게 지키며 정밀한 곳에 나아가 거의 그 지극한 곳에까지 이르렀다. 편
것은 수수하였고 기른 것은 아껴서 그침을 보지 못하니 애석하다. 晉鄙의 거처를 덕으로 훈도하며 奠楹의 자리를 예로 살피고 厓翁의 묘지문을
보배같이 중하게 여기며 栢老의 哀辭를 미루어 옮긴다. 오직 이 魯林의 숨겨진 지경은 진실로 새로 세울 만한 땅이다. 비록 음성과 모습은
이미 멀어졌어도 그 남기신 말씀은 잊기 어려워 몇 년간 여러 선비들이 일을 계획하니 이 날에야 함께 의논하며 인도하게 된 것이다. 시내 근원이
맑고 깨끗하니 沂水의 노래와 거의 비슷하고 산악이 우뚝하고 넓으니 農山과 대가 될 만 하다. 훗날 높이고 흠모함을 붙이려 이제 시작한다. 뒷날
제향을 받들려 이제 우리가 법식을 따라 옛 땅에 남은 자취를 얻었다. 자연 풍광 좋은 때를 잡아 소나무 잣나무 우거진 사이에서 곧은 자태를
생각하면서 선비들이 다투어 재물을 풀어 일을 도타이 하고 사람이 생각을 다하여 공을 바치니 어찌 빛나지 않으랴. 사당을 바라보니 그 모양이 나는
듯 하고 저 톱과 도끼를 든 이들이 기쁘게 기술을 다하니 경물의 변화가 마치 선생을 직접 보는 것과 같다. 소자들은 마땅히 나아감이 있을
것이다. 오직 짧은 노래를 늘어놓아 들보를 올리기를 도우려 한다.
어기야 동쪽에 떡 던지니 들어와 藥山 바라보니 푸른 빛
짙구나 여러 사람이 이르러 기상이 머무르니 푸른 대 그윽한 志趣 사계절이 똑같아라
어기야 남쪽에 떡 던지니
빼어나게 두른 칡덩굴 구름과 섞였구나 세상 어지럼 조금도 관여치 않으니 천년을 두고 참된 건물 보호하리
어기야 서쪽에 떡 던지니 학이 높이 날아 하늘과 나란하구나 그 때에 도를 맺음은 일찍이 이곳에서니 상쾌한
빼어남 함께 오기 좋으리라
어기야 북쪽에 떡 던지니 푸른 냇물 흘러흘러 끝이 없도다 물결은 멀리 갓끈 씻은 물이니
어른의 참 근원 헤아리기 어려워라
어기야 위쪽에 떡 던지니 하늘에 별과 달 빛나는구나 우러르고 굽어보며 평생
독서하니 온전히 맑고 높음 밝히 숭상하도다
어기야 아래쪽에 떡 던지니 꽃과 대 이름난 정원 빼어나고 소박하다
지금까지 매년 香火 올리며 선비들 모여 들어 우러러 보노라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로는 제향 올림 잘 지키고
때맞추어 향기를 바쳐서 우뚝하게 선비들을 흥기시키며 성대히 文風을 일으켜 이 마을이 鄒魯의 고장이 되고 집집마다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자기를
닦아 남에게 미쳐서 백성들에게 널리 행해지며 안을 중시하고 겉을 가벼이 하여 도가 우리나라에 왕성하였으면 좋겠다.
원문의 餘師라는
단어는 스승으로 우러러 볼만한 사람이 다른 곳에 많이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六藝는 사람의 삶에서 치러야 하는 여섯 가지 중요한 예의를
말한다. 冠禮, 婚禮, 喪禮, 祭禮, 鄕飮酒禮, 相見禮를 말한다. 또는 혼인의 여섯 가지 의식이라 하여, 納采, 問名, 納吉, 納徵, 請期,
親迎을 나타내기도 한다. 皐比를 스승으로 풀었다. 皐比는 본래 호랑이의 가죽을 말하는데, 장군이나 학자 등의 좌석에 虎皮를 깔았기 때문에
장군이나 학자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屬玉은 白鷺의 일종이다. 『논어』, 「先進」편에 보면 공자가 세 제자에게 한 물음을 물었을
때 曾點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여기에서 끌어온 부분이다.
白屋을 ‘백성들’이라고 번역했다. 白屋은 草家, 즉 가난한 집을 나타내므로 이 의미가 널리 사용되어 일반 사람, 즉 庶民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魯林書院奉安文
禮義名鄕 禮義있는 유명한 땅 魁彦繼作 큰 선비 계속 나왔도다 陶山倡學 퇴계 선생이 배움을 창도해 洙泗正脉 洙泗의 바른 맥으로 인도했다 寔維先生 진실로 우리 선생은 早識依歸 일찍 귀의할 곳 알아서 束脩踵門 폐백 올려 문하에 들어가 函丈摳衣 스승께 겸손히 배웠다 絶意浮慕 뜬 세상에 생각을 끊고 住脚實地 참된 땅에 발을 머물렀도다 探賾墳典 경전을 탐색하여 淹貫義理 침잠하여 義理를 꿰뚫었도다 文章餘事 文章은 남은 일로 여기시며 亦足成名 또한 이름을 이루시기 충분하였다 始登庠選 비로소 과거에 오르심은 非爲身榮 몸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요 退守邱樊 물러나 시골 땅 지키며 薖軸攸宜 마땅한 바를 따라서 著說自警 분명히 말씀하며 스스로 경계하여 如對嚴師 엄한 스승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도다 書ꞎ道膏 글을 읽고 도를 살찌우며 憲貧回樂 안회가 가난해도 기뻐한 것 본받았다 踐履篤實 도타이 실천하여 見得的確 확고함을 보였고 十年藏修 십년간 머물며 학문 익혀서 再膺徵辟 여러 번 임금의 부르심을 입었도다 華聞藹蔚 빛난 이름 성대히 들려 朝著拭目 조정에서 괄목상대가 되었다 黽勉赴召 부르심에 나아가 힘써 행함은 爲親屈志 부모를 위해 뜻을 굽혔음이라 擊蒙養正 어둔 이를 고무시켜 바름을 기르고 動引經旨 때마다 늘 경전의 뜻을 인용하였다 叩質疑義 의심나는 것을 힘써 살펴보니 宸翰寵異 왕의 총애가 남달랐도다 薄試微職 은미한 지식도 널리 시험하여 已徵其有 자기에게 있는 것들을 징험했도다 卒靳顯施 끝내 현달함은 미미했지만 而厥壽士 이 때에 돌아가시자 林流慟尊 儒林에서 높이며 慕靡替令 흠모함 그칠 줄 몰랐도다 名懿行理 아름다운 이름 널리 알려졌으나 罔終翳睠 끝내 왕의 돌아봄은 없었어도 玆魯林院 이 魯林서원에서 道義有契 道義로 맺었다 俎豆齊薦 祭器를 나란히 올려 揆禮無違 예에 맞도록 준비하여 芬苾惟誠 향기론 제물 정성껏 올리니 庶幾格思 오셔서 흠향하소서
□ 위의 글은
權宇(1552-1590)의『松巢先生文集』에 수록되어 있다. 원문에는 函丈摳衣라고 쓰여 있다. 函丈은 스승을 나타낸다. 摳衣는 옷의
아랫도리를 걷어올린다는 뜻인데 상대에게 정성껏 예를 올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宸翰은 천자가 직접 쓴 문서, 즉 천자의 친필을 나타낸다.
魯林書院吟呈諸友
潛德幽光閟幾年 숨긴 덕 그윽한 빛 문닫음 몇년이던가 儒宮初闢故墟邊 儒宮을 옛 터 가에 처음 세웠네 厓翁信筆堪傳後 厓翁의 미더운 붓 후세에 전함 감당하여서 栢老高詞已唱前 栢老의 높은 말씀 이미 앞서 제창했구나 作聖工程由向正 거룩한 工程 이루어 바름으로 향하였으니 象賢論議不容偏 선현의 議論 본떠 치우침 없었도다 溪山風月猶依舊 계곡 산 바람 달 모두가 옛날 같으니 緬挹遺芬欲理絃 남기신 좋은 가르침으로 악기 줄 고르리라 次魯林齋會時韻
昔賢去已遠 옛날 先賢 가신지 이미 오래나 流風猶在人 남은 풍속 여전히 사람에게 있네 百年公議定 백년의 公論 이미 정해졌으니 今日享儀新 오늘의 享祀 더욱 새롭기만해 林壑延佳氣 숲과 골짝 고운 기운 끌어들이니 衣冠映暮春 의관 갖춘 선비 늦봄에 빛나는구나 指南遺訓在 남쪽 가리킨 남은 교훈 남아 있으니 從此不迷津 이제부턴 헤매는 이 없을
것이라 魯林書院常享祝
衛翼斯道 斯道를 지켜 떨쳐서 矜式後人 後人에게 모범 되었네 永世不忘 영원토록 잊을 수 없으니 玆薦明禋 이에 정성껏 제사 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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