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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편 - 鳳山書院(봉산서원) -

 
위치 : 의성군 다인면과 예천의 접경지대(위치 확인 불능)
건축 : 1634년(인조 12) 창건, 1869년(고종 6) 훼철
배향인물 :  권오복(權五福), 권맹손(權孟孫), 권장(權檣), 문관(文瓘), 김복일(金復一), 권문해(權文海), 권욱(權旭)
배향일: 不享

『교남지』37권 : 在郡南五十里. 仁祖甲戌建. 享校理權五福, 追享齊平公權孟孫, 郡守權檣, 校理文瓘, 司成金復一, 承旨權文海, 參奉權旭.

 

▶ 해설

 

『교남지』37권, 醴泉 지역 부분에 이 서원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봉산서원은 권문해 등 권씨 일가를 봉향한 서원이다. 권문해 등의 문집이나 그들의 행적을 다룬 글에서 이들을 봉산서원에 봉향하였다는 기록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성군 다인면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다인면 어느 쯤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써 확인할 수 없다. 예천권씨 종가의 종손 권영기 씨의 말에 의하면 의성군 다인면과 예천의 접경지대에 있었다고 하지만 어디쯤이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참고]문집에 보면 鳳山書院有感 醉筆(盧守慎, 蘇齋集5권), 鳳山書院奉安蘇齋盧先生文(李萬敷, 息山集19권), 鳳山書院配享一松沈公文(李萬敷, 息山集19권), 鳳山書院東園丁公好善奉安文辛亥 (安鼎福, 順菴集20권) 등의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鳳山書院은 盧守慎, 沈喜壽, 丁好善, 金弘微, 曺好仁, 黃翼再 등을 봉향한 尙州에 있는 봉산서원을 말하는 것이다. 구분해야 마땅 하다.

 

▶ 관련 글

 

鳳山書院追享常享祝文

                旨訣陶山      陶山에서 지결을 익히고
                唱和金昆      형제들과 부르고 답했네
                濟剛以和      온화함으로 어려움 이겨내고
                學力之敦     배움에 힘씀 돈독하였네
                    


□ 이 글은 金復一의 『南嶽先生逸稿』에 실려 있다. 봉산서원의 상향축문은 여러 개가 있다. 그 중의 하나다. 이 글은 <鳳山書院追享常享祝文>이라는 제목으로 小山集에도 실려 있다.

鳳山書院追享常享祝文

                大賢畏弟      큰 賢人과 그의 畏弟
                己卯賢良      기묘년 화 당한 어진 인물이라
                高風峻節      고결한 풍모 엄한 절개
                百世流芳      영원토록 아름답게 전하리
                
    


이 글은 李光靖의 小山集에 실려있다. 여기에는 총 4편의 글이 같은 제목 아래 있다.

鳳山書院追享常享祝文

                忠孝旣立      충효를 이미 세웠으니
                學問有源      학문에 연원이 있음이라
                潛德幽光      덕을 숨겨도 빛은 그윽하니
                沒世難諼      세상이 다해도 속이기 어렵도다
                
    


小山集에 실려 있다.

鳳山書院常享祝文

                傳襲詩禮      집안에서 교육을 받고
                琢磨友師      벗들과 스승 간에 연마 했도다
                黯直誨見      급암같은 곧음과 誨 같은 식견이
                今古一規      고금간의 한결같은 모범이어라
                
    


같은 내용의 글이 『소산집』10권에는 草澗 勸文海의 글이라 표시되어 있고, 『초간집』5권에는 <鳳山書院常享祝文>이라는 제목으로 李光靖의 글이라 표시되어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鳳山書院上樑文

遺風未沫於百世, 激濁揚淸, 廟貌有覺於兩楹, 從新舍舊. 已喜妥靈之得所, 更賀作人之有方. 恭惟睡軒權先生, 大雅之才, 英特之質, 麗澤之相資益. 左梅溪而右濯纓, 淵源之有自來, 宗別洞而師佔畢. 摛藻擅鳳毛之譽, 幾登文石之階, 論事有鶚立之風, 不負臺端之席.
方期斯道之丕闡, 不幸時事之大乖, 羣奸側目於班行, 暗售網打之計, 衆賢迸首於刀鉅, 終罹羅織之文, 幽寃鬱結於覆盆, 天日之改照何世. 精魂臨晲於故土, 士林之尊慕如晨, 睠玆沙伐之舊疆, 亦是襄陽之屬縣, 鄕先生沒而祭, 杜禮固當然. 諸父老爲之建祠, 文在玆矣, 春秋芬苾, 不替崇奉之儀, 詩禮絃歌, 將見作成之美. 背後負萬仞之峀, 雖有深僻之奇, 面前阻一帶之朝, 殊次淸曠之致. 肆於某甲之歲, 迺有移建之謀, 剛州之伊山初移, 旣有前事, 甘泉之物溪再卜, 匪出新規, 玆皆趨吉而避凶, 非忽愼重之道, 只緣役鉅而工拙, 不無疏漏之歎. 齋廚有棟撓之形, 覆隉可慮, 堪輿告宅新之吉, 故宇何懷.
所以多士之同辭, 爰卜大興之東麓, 占地據高明之位, 野濶天低, 拓基審背面之宜, 山回水抱, 分佳景於二樂, 舍此何求. 挹爽氣於三淸, 爰得我所, 惟其人謀之克恊, 果見龜○之不違, 考方位於定中, 營度之功旣至, 訪規模於大壯, 棟宇之制將新. 章甫殫誠董役, 期指日之効, 工匠致力運斤, 獻生風之能, 幾憂礎上之傾頹, 今見眼前之突亢, 喬木有鸎遷之喜, 菁莪之敎可興, 華搆如鳥革之飛, 陟降之靈有托, 雲煙媚嫵, 若有光於從前, 基址宏深, 永無獘於垂後. 欣瞻縟儀之復擧, 佇見斯文之始昌, 助擧脩樑, 聊興善頌.

抛樑東
大野東頭望德峯
祥鳳煌煌鳴不下
幾時佳實結梧桐

抛樑西
遏雲山高春日低
興國遺墟今尙在
昔賢芳躅與之齊

抛樑南
舊墟雲物鎻晴嵐
廢興有數須莫恨
孟氏遷居亦再三

抛樑北
大江滔滔流不息
願使工夫無暫停
終須學海歸溟渤

抛樑上
白日靑天光照朗
安得此心如彼明
燭來萬理皆通暢

抛樑下
天空眼濶臨平野
光明寶藏是吾家
不必求田更問舍

伏願上樑之後, 山川無改, 棟宇長存, 遵白鹿之古規, 地有興學之美, 想黃馬之遺躅, 人懷勵操之心.


遺風이 백세토록 그치지 않아 악한 것을 물리치고 선한 것을 드러내며, 묘당의 모습이 두 기둥 사이에서 높고 크고 곧으니 새로움을 따르고 옛 것을 버린 것이다. 혼령이 제 곳을 얻은 것을 기뻐하며 사람을 인도할 방법을 잡았음을 더욱 축하한다. 睡軒 權先生은 그 재주가 매우 우아하고 그 자질이 탁월하게 빼어나다. 붕우들이 서로 도와 보익이 되었으니, 왼쪽에 梅溪를 두고 오른쪽에 濯纓을 두었으며 연원이 분명하니 別洞을 마루로 삼고 점필재 김종직에게 사사했다. 아름다운 문장과 뛰어난 풍채에 대해 기림을 받아 文石의 계단에 오를 만 했으며 일을 논할 때에는 홀로 우뚝한 풍모가 있어 臺端의 자리에도 부끄럽지 않았다.
바야흐로 斯道가 널리 펴지기를 기약할 때에 불행히도 세상일이 크게 어그러져 여러 간신들이 조정 안에서 틈을 엿보아 몰래 일망타진할 계책을 부리고 여러 현인들이 큰 칼에 머리를 베이고 문자의 그물에 걸려들어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적막한 곳에 엎드러지니 하늘의 태양이 다시 비출 것은 어느 때런가. 혼령이 고향 땅을 굽어보시니 사림들의 존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은 처음이나 다를 바 없다. 이곳은 沙伐은 옛날 선생께서 사신 땅으로 襄陽의 속현이다. 고향의 높은 선생이 돌아가시면 제사를 지내며 예를 드리는 것이 진실로 당연하다. 여러 父老들이 그를 위하여 사당을 세우니 文敎가 바로 여기에 있다. 봄가을로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면서, 높이며 받드는 의례를 바꾸지 않는다. 詩禮를 연주하며 장차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려 하였다. 뒤쪽에 만길 깊은 굴을 등지고 있어서 궁벽한 기이함이 있고 앞쪽에는 일대 마을과 떨어져 있어서 맑고 트인 운치가 있었다. 아무 해에 장소를 옮겨 세울 계획이 있어서, 剛州의 伊山에 처음 옮겼다가 이미 지난번의 일이 있었고 甘泉의 物溪를 다시 장소로 정하려 했다. 새로운 규칙을 내지는 않고 이에 모두 길지로 쏠리고 흉지를 피하려고 할 뿐 삼가는 도리는 없었다. 다만 공사의 규모는 큰데 솜씨는 졸렬하여 엉성하고 빠지는 탄식이 없을 수 없었다. 齋室과 廚舍에 용마루의 모양이 휘어지고 지붕이 위태로울까 걱정이 되었다. 堪輿家가 길지를 고한 것인데 묘우가 어찌 무너졌는가.
여러 선비들이 한 목소리를 낸 까닭에 大興의 東麓에 터를 잡으니 잡은 터는 高明의 위치를 차지하여 들판이 툭 터져 하늘에 닿은 곳이며 터를 파고 앞뒤의 마땅함을 살피니 산이 둘러 있고 물이 이를 안고 돌아간다. 분명 二樂보다 아름다우니 이곳을 버리고 어디서 구하겠으며 三淸보다 더 시원한 기운을 가진 곳이 우리가 얻은 곳이었다. 오직 여러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니 과연 점친 것을 어기지 않았다. 방위를 측정하여 가운데에 깨끗하게 만드는데, 재는 공이 이미 지극하고, 웅장한 규모를 구하니 대들보가 장차 이루어지려한다. 선비들이 정성을 다하고 힘을 합치어 다른 날 성공할 것을 믿고 힘썼고, 工匠들이 힘을 다하여 도끼를 놀려 온 정성을 다 바치니 주춧돌이 기울까 걱정이던 것이 이제는 눈앞에 우뚝하고 큰 나무에 새들 날아와 기뻐하듯 다들 축하하니 인재를 가르치는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새가 날개를 펴는 듯 건물이 흘륭하니 혼령이 내려와 의탁하는 듯, 구름과 안개가 아름답게 감싸서 앞에서 빛을 내는 것 같고 터가 넓고 깊어 후세에 영원히 폐가 없을 것 같다. 기쁘게 복잡한 의례를 다시 거행하고 斯文이 비로서 창성함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들보를 들어 올리며 애로라지 아름다운 송축을 올린다.

어기야 동쪽에 떡 던져라
넓은 들 동쪽 머리 德峯을 바라본다
상서로운 봉황소리 그치지를 않으니
오동나무 좋은 열매 맺힐 때 되었네

어기야 서쪽에 떡 던져라
구름도 막히는 높은 산에 봄볕 쪼이도다
나라 일으킨 남은 터 지금도 있는데
옛 현인 꽃다운 자취 나란히 있구나

어기야 남쪽에 떡 던져라
구름낀 옛 터 아지랑이 맑게 개었도다
폐하고 흥함 운수가 있으니 한할 것이 없으니
맹자도 거처 옮김 여러 번 했었다네

어기야 북쪽에 떡 던져라
큰 강 도도한 흐름 그치지 않도다
원컨대 공부하기 쉬지를 말게나
끝내 학문의 흐름 이곳으로 돌아올테니

어기야 위쪽에 떡 던져라
밝은 해 푸른 하늘 빛은 밝게 비추도다
어찌 이 마음 저와 같이 밝게 하리
온갖 진리 비추니 모두가 통하리라

어기야 아래쪽에 떡 던져라
탁 트인 하늘 눈엔 평야가 보이도다
빛나는 귀한 곳 이곳이 우리 집일세
밭은 아니라도 다시 집을 묻노라

들보 올린 후에 산천이 모두 바뀌어도 묘우는 길이 남기를 바란다. 白鹿洞 서원 옛 규약을 따라 교학의 아름다움을 일으키는 땅이니 선인의 남긴 자취를 생각하며 사람들은 힘쓰고 힘쓸 지어다.


堪輿家는 산소 자리를 잡는 일을 전문하는 하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風水家라 하기도 한다.

鳳山書院 관련 옛 기록

○『교남지』37권(醴泉 지역 부분에 있음)
在郡南五十里. 仁祖甲戌建. 享校理權五福, 追享齊平公權孟孫, 郡守權檣, 校理文瓘, 司成金復一, 承旨權文海, 參奉權旭.

○『俎豆錄』, 醴泉 부분
肅宗辛酉建.
權五福[字嚮之, 號睡軒, 醴泉人. 世宗丁亥生, 成宗丙午司馬, 仍登科. 燕山戊午被禍. 官校理, 本府郡守, 贈承旨. 家鄕.]

○『교남지』37권(醴泉 지역 부분에 있음)
군의 남쪽 50리 되는 곳에 있었다. 인조 갑술년에 세워졌다. 교리 권오복을 봉향하였고 제평공 권맹손과 군수 권장, 교리 문관, 사성 김부일, 승지 권문해, 참봉 권욱을 배향하였다.

○『俎豆錄』, 醴泉 부분
숙종 신유년에 세워졌다.
봉향인물: 권오복[자는 嚮之이고 호는 睡軒이다. 醴泉 사람이다. 세종 정해년에 태어났다. 성종 병오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등과하였다. 연산군 무오년에 화를 입었다. 교리 벼슬을 지냈으며 우리 지방 군수를 지냈다. 승지로 추증되었다. 이곳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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