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誠一 門中 完議文(김성일 문중
완의문)
명 칭 : 완의문 작성연대 : 1581년 작성자 : 수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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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 문서는
종가가 매우 곤궁하여 가묘에 사계절 중삭의 제사를 폐하고 시행하지 못하여 추원의 정성을 쓸어버릴까 염려하여 문중의 의논을 모아 묘전을 묘위로
옮기며 자손들에게 추원의 정성을 폐하지 말 것을 권유한 글이다.
원문
萬曆九年辛巳
四月二十九日 門中完議文 右文者 宗家窮甚 家廟四仲朔祭事 專廢不行 子孫追遠之誠 掃如極爲寒心爲置 知禮谷畓加耕八斗落只庫乙 先世始叱 杲林墓田
以依屬爲有在果 更良僉議爲乎矣 齋寺三寶位叱段 宮屯田尙多 雖非此畓 猶可耕食爲旀 四明日祭叱段置 子孫輪行 雖非此畓 猶得不廢爲乎事是在乎
先世家廟四仲朔祭不廢條 以許屬宗家 以資粢盛之供爲乎矣 墓祭家廟祭器等物 辦出無路 亦爲可慮 同畓所出乙 三年一次式 分半貿易 彼此情義 允爲兩合爲乎等乙用良
門議僉同 移屬宗家 一以爲祭享 一以爲□ 四 永永無廢爲乎矣 曾祖神主代盡出廟爲去乙等 右畓乙 還屬墓位 子孫中有司輪定 禮文貌如 歲一祭之 百世不改爲乎事
此亦中宗家自有承重 必于貧乏爲乎乙喩良置 廢祭不行 猶有罪責爲去等 況 門議僉同 移屬墓田 以資祭用爲乎矣 猶不用心 因循廢祭 則墓位之田乙 虛屬未安
子孫相與規正 猶不奉行爲去乙等 同畓乙 墓田以還屬事 右文三度成置 分藏宗家 及部將府使宅 以備後賣次 右畓流字三等十五卜二束 前部將 金珀 (手決)
前參奉 金璲 幼學 金元一 (手決) 前密陽府使 金克一 (手決) 前直長 金宗一 (手決) 生員 金守一 (手決) 幼學 金精一
(手決) 幼學 金得一 (手決) 佐郞 金復一 (手決) 幼學 金德一 (手決) 幼學 金協一 (手決) 幼學 金至一 (手決) 筆
舍人 金誠一 (手決)
번역
만력 9년 신사
4월 29일 문중 완의문 이 문서는 종가가 매우 곤궁하여 가묘에 사계절 중삭의 제사를 오로지 폐하고 시행하지 못하여 자손들이 추원의
정성을 쓸어버림이 극히 한심스러워 지례골 논 경작할 수 있는 여덟 마지기 곳을 선대에 비로소 고림의 위토로 소속시켰고 다시 의논을 한다. 재사
삼보위는 궁둔전이 여전히 많다. 비록 이 논이 아니라도 농사지어 먹을 수 있으며 네 명절 제사도 자손들이 돌아가면서 행하며 비록 이 논이
아니라도 폐할 수 없는 일이다. 선대 가묘 사계절 중삭 제사를 폐할 수 없다는 조항은 종가에 속하는 것으로 제수를 마련하여 올릴 것이나 묘제
가묘 제기 등 물은 힘써 나올 곳이 없으니 역시 걱정이다. 같은 논에서 나오는 것은 3년에 한 번씩 반을 나누어 바꾸니 내외손의 정의가 진실로
양쪽이 합해지거든 문중에 논의가 모두 같아져서 종가에 옮겨 한결같이 제향하고 한결같이 (사계절 봉사하여) 영원히 폐하지 말 것이다. 증조의
신주가 대수를 다하여 묘당을 나가게 되면 위 논을 그 묘위에 환속하고 자손 중에 유사를 돌아가면서 정하여 예문과 같이 한 해 한 번 제사를
지내며 백세도록 바꾸지 말라. 이 중에 종가에 승중이 있는 것으로부터 반드시 가난하고 궁핍한 것으로 제사를 폐하고 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다. 하물며 문중의 의논이 모두 같아서 묘전을 옮겨 붙여 제사 비용으로 함에 있어서랴! 여전히 마음을 쓰지 않고 옛 습관에 젖어 제사를
폐하면 묘위의 밭을 헛되이 붙인 것에 미안하니 자손들은 서로 바로잡아 봉행하지 않거든 같은 논을 묘전으로환속 할 것. 위 문장을 셋으로
만들어 종가 및 부장부사댁에 나누어 보관하여 뒤 방배에 대비할 것. 위에서 말한 논은 유자 3등 15복 2속이다. 전부장 김박
(수결) 전참봉 김수 유학 김원일 (수결) 전밀양부사 김극일 (수결) 전직장 김종일 (수결) 생원 김수일 (수결) 유학
김정일 (수결) 유학 김득일 (수결) 좌랑 김복일 (수결) 유학 김덕일 (수결) 유학 김협일 (수결) 유학 김지일 (수결)
필 사인 김성일 (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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