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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편

 

 

 

박승임(朴承任)

박승임(朴承任 ; 1517∼158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 경상북도 영주출신. 형(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만일(萬鎰)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24세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승정원·홍문관 등에서 여러 청환직을 역임하고, 정자(正字)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어 수찬에 승진되고, 이조좌랑을 거쳐 정언(正言)이 되었다가 당시 세도가인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의 횡포가 날로 심하여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547년(명종 2) 예조정랑에 다시 임명되고, 1557년 직강(直講)을 거쳐 사예(司藝)가 되었으나 윤원형의 세도가 더욱 심하여 벼슬에서 은퇴, 두문불출하며 독서에 힘썼다.
그 이듬해 풍기군수로 다시 임명되어 치적을 쌓고, 임기가 만료되어 교감(校勘)에 임명하려 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얼마 후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임명되었고, 판교(判校)를 거쳐 1565년 병조참의에 승진되고, 그 이듬해 동부승지로 전직되었다가 얼마 뒤 진주목사로 나아갔다. 1569년(선조 2) 동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71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좌승지에 임명되었다.
1573년 도승지에 승진되었으며, 다음해 경주부윤이 되었다. 1576년 다시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강화부유수·여주목사를 거쳐 1581년 춘천부사에 나아갔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583년 공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으나 언사(言事)에 연루, 왕의 뜻에 거슬려 창원부사로 좌천, 얼마 뒤 중앙에 소환되었다가 병사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의 구산정사(龜山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성리유선 性理類選≫·≪공문심법유취 孔門心法類聚≫·≪강목심법 綱目心法≫ 등과, 문집인 ≪소고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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