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척(高應陟)
고응척(高應陟 ; 1531∼1605)의 자는
숙명(叔明), 호는 두곡(杜谷), 취병(翠屛)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선생은 김범(金範)의 문인으로 1549(명종4)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6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함흥교수(咸興敎授)로 부임하여 문회당(文會堂)을 짓고 『대학장구혹문(大學章句或問)』에 발문(跋文)을 지어
간행하였다. 『대학(大學)』의 여러편을 시조로 읊어 만드는 등 사상적 체제를 시(詩), 부(賦), 가곡(歌曲)등으로 표현했다.
1595년(선조 28)년에 풍기군수(豊基郡守), 이어 회덕현감(懷德縣監), 사성(司成)등을 역임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부임했다가 곧 사직했다. 선산(善山)의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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