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金誠一)
김성일(金誠一 ; 1538∼1593)의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 진의 넷째 아들이다. 이황의 문인이며, 1568년(선조 1) 문과에 급제하였다. 봉교(奉敎)를 거쳐 1574년
사가독서하였다. 157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후 장령(掌令)·부제학(副提學)·나주목사(羅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1590년 통신부사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귀국하였다.일본 유학의 원조(元祖)인
갈원성와(藤原惺窩)에게 퇴계학의 진수를 처음 가르쳤다. 일본의 침략을 경고한 서인(西人) 황윤길의 보고에 `나는 그런 정세를 본 일이
없다(不見如許情形)`고 하였는데, 임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류성룡(柳成龍)의 변호로 화를 면하였다. 그 뒤
경상우도병마절도사·초유사·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 역임하다가 진주(晋州)에서 병사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호계서원(虎溪書院)·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저술로는『상례고증(喪禮考證)』·『해사록(海사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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