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金圻)
김기(金圻 ; 1547∼1603)
조선중기의 학자 김기(金圻 ; 1547∼160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숙(止叔), 호는 북애(北厓)이다.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와 함께 창의하여 정제장겸소모관(整齊將兼召募官)으로
토적에 힘썼으며 태조어용(太祖御容)이 병란을 피해 예안의 백동서당(柏洞書堂)에 이안하게 됨에 성심껏 수호하였다. 또한 陶山院長이 되어 퇴계문집을
간행하는데 공로가 지대하였다. 1602년에 순릉참봉(順陵參奉)이 되고, 1607년에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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