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일(金復一)
김복일(金復一 ; 1541∼159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순(季純), 호는 남악(南嶽). 만근(萬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예범(禮範)이고, 아버지는
생원 진(璡)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세경(世卿)의 딸이다. 병마절도사 성일(誠一)의 아우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學諭)·전적(典籍)을 역임하고,
형조·호조·공조의 낭관을 지냈다. 그뒤 전라도어사로 나가 탐학한 관리들을 숙청하였다. 1587년 울산군수에 이어 창원부사가 되어 폐단이
심한 그곳을 잘 다스렸다. 이어 경주교수(慶州敎授)가 되어 학생들을 경학으로써 인도하여 도의를 크게 일으켰으며, 성균관의 사예(司藝)·사성 및
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안동의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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