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로(黃耆老)
황기로(黃耆老 ; 1521∼1567).
조선시대의
서예가.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駘叟), 호는 고산(孤山)·매학정(梅鶴亭).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한 뒤 고향에 은거하여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불렸다. ≪근묵 槿墨≫ 등에 진적이 전하며, ≪동국명필
東國名筆≫·≪대동서법 大東書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 이밖에 1549년 이백(이백)의 〈초서가행〉을 쓴 초서필적이 석각(석각)되어
전하는데, 당나라 회소(懷素)의 ≪자서첩 自敍帖≫중 광초(狂草)를 방불한다. 금석으로 충주의 이번신도비(李蕃神道碑, 1555)가 있다.
조선시대 서예사에서 초서로는 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제1인자라는 평을 받아왔으며,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풍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아우인 영로(榮老)도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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