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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편 -龍巖集 -

 

與退溪書

雲竊念天之降才非有中外之偏 吾東 僻處一隅而人材之盛可以擬諸中華 其間勳名節義言行氣㮣 可以聳動耳目 爲世所範者有難枚數 文獻寥寥邈焉無徵 深所慨歎 欲撰海東名賢錄 以僃私覽 地偏間寡 經一紀而未就 自崔孤雲以下 以至前朝鄭圃隱吉冶隱而至我朝金司藝叔滋金先生宏弼金淸寒時撰千百中 僅錄一二而猶未詳焉 高明 有司命權衡之責而居四方㧾會之地 出入賓朋 俱是賢明之儔須廣搜而默誌 以撰成此錄而傳之何如 嘗觀宋朝名臣言行錄 自趙普以下諸賢名行 豈皆渾全 以至三蘇王臨川陸象山所學趨向之異而猶有取者 何也 豈其一言一行之有可取而他不暇顧歟 以是觀之 吾東之所可收想 必多矣而不可輕自草略 明矣 方今文詞雜 集行於世者不爲不多而不知是有何補於名敎耶 所謂無而無損有而無裨也 願畱意於斯 隨所聞而纂錄 使前賢嘉言懿 行不至磨滅今後人有所傳述焉 不勝幸甚 每以謬妄之見 塵凟高明 深以爲懼 第以還山無期 靣承何緣 不覺言之縷縷 慕齋撰金先生宏弼行狀云云 收見爲幸 至如七傳與南秋江朱溪君 不可人錄耶


운절념천지강재비유중외지편 오동 벽처일우이인재지성가이의제중화 기간훈명절의언행기㮣 가이용동이목 위세소범자유난매수 문헌요요막언무징 심소개탄 욕찬해동명현록 이僃사람 지편간과 경일기이미취 자최고운이하 이지전조정포은길야은이지아조금사예숙자금선생굉필금청한시찬천백중 근록일이이유미상언 고명 유사명권형지책이거사방홀회지지 출입빈붕 구시현명지주수광수이묵지 이찬성차록이전지하여 상관송조명신언행록 자조보이하제현명행 기개혼전 이지삼소왕림천륙상산소학추향지이이유유취자 하야 기기일언일행지유가취이타불가고여 이시관지 오동지소가수상 필다의이불가경자초략 명의 방금문사잡 집행어세자불위불다이불지시유하보어명교야 소위무이무손유이무비야 원畱의어사 수소문이찬록 사전현가언의 행불지마멸금후인유소전술언 불승행심 매이류망지견 진독고명 심이위구 제이환산무기 靣승하연 불각언지루루 모재찬금선생굉필행장운운 수견위행 지여칠전여남추강주계군 불가인록야


여퇴계서 저[雲]는 가만히 생각하옵건데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내릴때 중국과외국의 차이를 두지 않앗기 때문에 우리 조선은 한 모퉁이에 있으면서도 인재의 풍성함은 가히 중국에 비길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유사이래 공훈(功勳), 절의(節義), 언행(言行), 기개(氣槪)가 귀와 눈을 뒤흔들어 세상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나 문헌에 기록되어 전하지 못하므로 아득히 증거를 댈수 없으니 깊이 개탄할 일입니다. 때문에 『해동명현록(海東名賢錄)』을 지어 사적인 열람(閱覽)자료로 삼고자 했으나 제가 있는곳이 벽촌이고 견문이 적어10년이 지났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최고운(崔孤雲)으로부터 고려의 정포은(鄭圃隱), 길야은(吉冶隱),본조의 사예(詞藝) 김숙자(金叔滋), 김굉필(金宏弼)선생, 김시습(金時習)에 이르기까지 천백(千百) 가운데서 겨우 한둘을 기록했을 뿐이니 아직 자세하지 못합니다. 선생[高明]께서는 권형(權衡)을 명령하는 직책을 맡고 계시며 사방에서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에 계실뿐만 아니라 만나시는 빈객과 친구들이 다 현명한 분들이니 오로지 넓게 수집하고 알차게 기록하여 이와 같은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을 지어 후세에 전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일찍이 송조(宋朝)의 『명신언행록』을 보니 조씨계보(趙氏系譜) 이하 여러 현인들의 유명한 행실은 다 뒤섞여 이루어져 있으니 삼소(三蘇), 왕임천(王臨川), 육상산(陸象山)에 이르기까지 그 학문의 취향이 다름에도 오히려 취하여 기록한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한가지말, 한가지 행동이라도 취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취했을 뿐 그 외 다른 것은 관계하지 아니한 탓이었는지요?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우리조선에도 취할 수 있는 인물들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부로 초략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방금 문사(文詞)와 여러 가지 일들로 세상에 행새하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아니하나 그것을 다 기록한다고 해서 명실교육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른바 없어도 손해가 아니고 있어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일 것입니다. 원컨대 여기에 대해 유의하셔서 들은 바에 따라 기록하여 전현(前賢)들의 아름다운 말과 떳떳한 행동릉 없어짐에 이르지 않게 함과 동시에 뒷날 사람들로 하여금 전해 기술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더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늘 보잘것 없고 요망스러운 견해로써 선생을 어지럽게 해드려서 두려울 뿐입니다. 도산에 돌아올 기약이 없으니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요. 두서없이 이만 그치겠습니다. 모재(慕齋)가 지은 김굉필선생의 행장(行狀)을 볼 수 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칠인전(七人傳)과 남추강(南秋江)․ 주계군(朱溪君)의 행장은 삽입기록할 수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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