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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편 -惺軒逸集 -

 

惺軒先生逸集序

昔我退陶夫子 倡道東南 開門講授 一時及門之士 趨趨幷進 襲雨化之敎 充河飮之量 斐然成章 皆有聖人之一體. 余以所聞 惺軒先生白公 亦其一也. 蓋公以豪爽忒異之姿 有篤實遠到之志 始也啓發於惟一之席 終焉濯磨於大賢之門 釋回增美爲治心之節度 庸信庸謹爲學聖之準 則旣不欲處下而窺高 亦未嘗忽近而忘遠 勉勉爲山之功 不已乎其進也 懇懇尙絅之實 闇然乎其章也. 是皆公之所以俛焉孶孶八十年如一日 而師門所授敬箴之訣至是 而眞可謂不負矣. 又與同門諸先輩 爲石交 動有切偲之益 而於鶴峯先生 又傾倒焉. 羅府奉邀之誼 蓬舘忠信之勉 莫非道義中流出 而觀於鶴翁所相與 先生之賢 其益彰乎. 至若龍蛇倡義之事 卽公之一節也 略之何損焉. 於乎 先生之世在龍漢以前 文獻杞宋矣 漠焉無所攷 而今所掇拾 只是岱華之毫芒耳. 然其文精詳剴切 詩亦淡而不厭 大抵皆仁義之藹如也. 視世之鉤棘爲能雕琢爲工者 不其多矣乎. 公之從裔孫淳慶等 方謀壽傅 問序於不侫 自顧耄荒 何足以堪承 而竊惟龍門之契 有不敢負者 姑書所感如此 以寓景行之忱云爾. 丁未 莠葽節 後學 前義禁府都事 聞韶 金道和 謹序.


옛날 우리 퇴도(退陶)선생께서 영남지방에서 도(道)를 일으키시어 서원을 열어 가르침을 베푸심에 그 때 문하에 있던 선비들은 총총히 함께 나아와 단비와 같은 교화를 받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조화로운 문채를 이루었으니 모두 성인(聖人)의 한 부분을 얻은 것이다. 내 들으니 성헌(惺軒)선생 백(白)공 역시 그 중의 한 분이셨다. 공께서는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남다른 자질로 독실하게 먼 곳에까지 이르시려는 뜻을 지니어 처음에는 유일재(惟一齋)1)선생에 의해 계발(啓發)되더니 끝내는 대현(大賢)의 문하에서 탁마(濯磨)되어, 사벽(邪辟)함을 버리고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절도로 삼고 평상시 말을 미쁘게하고 평상시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써 성인(聖人)을 배우는 준칙으로 삼으시었다. 그러므로 낮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곳을 엿보려하지 않으셨지만 또한 가까운 것을 소홀히 하며 먼 곳을 잊으신 적이 없었으니, 부지런히 산을 이루려는 노력을 하여 진보하기에 그침이 없었으며 정성스럽게 ‘홑옷 덧입음[尙絅]’을 실천함으로써 문채의 지나친 드러남을 감추었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공께서 부지런히 노력하여 80년을 한결같이 한 것이요, 스승께서 주신 「경재잠(敬齋箴)」의 지결(旨訣)로서 이렇게까지 지극히 하였으니 진실로 스승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이를만 하도다. 또한 동문(同門)의 여러 선배들과 더불어 돌[石]같이 돈독한 교제를 맺어 행동에 간절하고도 자상한 도움이 있었는데 학봉(鶴峯)선생에게는 더욱 경도된 바가 있었다. 학봉선생이 나부(羅府)로 초청하여 대접한 우의로움2)과 선생이 봉관(蓬館)으로 찾아가 충신(忠信)으로 권면한 일3) 등은 모두가 도의(道義)로부터 유출되어진 것으로, 학봉선생과 서로 함께한 바를 살펴보면 선생의 어짊이 더욱 분명해진다. 의사(義士)들과 의병활동을 한 일은 바로 공의 한가지 절조일 뿐이니 생략하더라도 무슨 손상됨이 있겠는가! 아아! 선생의 용한(龍漢)이전의 시기에 대해서는 문헌(文獻)이 부족하고 아득해 상고할 바가 없으나 지금 수습한 것들은 태산과 화산[岱華] 중의 터럭에 불과할 정도 적은 부분이다. 그러나 그 문장들은 정상개절[精詳剴切]하고 시(詩) 역시 담백하면서도 싫증나지 않으니, 대개 모두 인의(仁義)의 기운이 자욱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갈고리나 가시로 새기고 꾸미는 것으로 솜씨있다고 여기는 세속의 글들과 비교해 보면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공의 먼 종손(從孫)인 순경(淳慶) 등이 바야흐로 문집을 오래도록 건하려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청해왔다. 스스로 돌아보건대 늙고 능력없는 내가 어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요마는 가만히 서로의 교분을 생각해보니 감히 저버릴 수 없어, 짐짓 느낀 바를 이렇게 적어 훌륭한 일을 하는 정성에 부치노라. 정미년(丁未年) 수요절(莠葽節, 4월)에 후학(後學) 전 의금부도사 문소(聞韶, 義城) 김도화(金道和)4)는 삼가 서하노라.
1)김언기(金彦璣 : 1520~1588) 조선중기의 학자. 자는 중온(仲昷)임. 2)1584년 학봉이 나주(羅州) 목사로 있을 때 나귀와 노복을 보내 공을 초청해 몇 달간 머물며 명승지를 유람하게 한 일을 말한다. 3)1590년 학봉이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에 공이 봉원(蓬原)의 관사로 뒤좇아 가 충신(忠信)한 마음으로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라고 권면한 일을 말한다. 4) 조선말기의 학자. 호는 척암(拓庵), 본관은 의성(義城)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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