跋
始余之謫玄風也 縣之章甫 爲余言洛川裵公之賢 余欲訪其文字而未能者 今從公五代孫大經氏 得此編而讀之 盖聞公平生所著述甚多
而逸於兵燹之餘 收錄於此者 只少時畧干篇矣 然亦可想其風流氣槩 而至若造詣高下 亦無得而徵焉 可慨也已 及讀附錄旅軒文字 然後知公言行頗實 噫 誠君子哉 若人
惜也使其志不能有所少施乎 士林畧有狙豆之報 而當今未聞有私淑者 豈不歎哉 余未知太史氏能大書公之言行以詔後 而將不泯耶抑未耶 若爾則重可惜哉 今之人
若以旅軒之文 ?之太史而爲之補逸 則千載之下 其亦有勤善也夫上之四十四年戊戌閏八月旣望 完山崔錫文 謹跋右洛川先生裵公遺集也 今去公沒二百有餘年
而著述之傳於世者 若是其寂寥 所謂存十一於千百者也 顧何所尋逐而證嚮其所造之淺深乎 公早事南冥先生 又遊於退陶之門 與聞旨訣 此則淵源之盛也 當明宣郅隆之世
郡賢彙進 可以仕矣 而時行則行 時止則止 此則出處之正也 無號位無聚祿 而人自樂趋之 出而太學 處而鄕塾 屨常溢戶 一經公指授 則皆繩趍尺步 端言謹行
不問知爲先生弟子 此則成己成物之功也 卽是數者而公本末盡之矣 又何必多乎哉 今以眉翁狀公觀之 則公之於此學 其求端用力專在於幾善惡之間 盖因讀大學第六章章句
而有以發其幾焉耳 惟幾也故其於義利公私之分 判然如白黑之易辨 而其行己也端而直 其處物也整而理 此其所以爲洛川先生也歟 古所謂非苟知之亦允蹈之者 公之謂矣
噫人誰不讀大學而知所用力如公者少 後之讀是集者 勿病其太畧 而其尙學公之所學也哉 驪江李鍾祥跋 처음 내가 현풍에 유배되었을 때, 고을의 어른들이
나에게 낙천 배신의 어짊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그 문장을 찾아 보려고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지금 공의 오대손 배대경씨를 통해서 이
글을 얻어서 읽게 되었다. 들으니, 공이 평소에 저술한 것이 매우 많은데, 전쟁과 화재로 잃어버리고 여기에 수록된 것은 젊은 시절의 몇몇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한 풍류와 기개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예의 고하에 대해서는 또한 확인할 수가 없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록에
실론 여헌 장현광의 글을 읽어 보고나서야 공의 언행이 자못 신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아 참된 군자로다. 이 사람이여! 애석하도다! 그 뜻을
조금도 펴보지 못한 것이. 사림에서 제사를 올리는 보답을 있으나 사숙하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사관이 공의 언행을 대서특필하여 후세에 보여 주어서 공의 언행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만약에 그친다면 더욱 애석한
일이다. 지금의 사람이 만약에 여헌 장현광의 문장을 사관에게 전해주어서 빠진 것을 채우게 한다면 천년 후에 또한 선행에 힘쓰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금상 44년 윤8월 완산 최석문은 삼가 발문을 쓴다. 위의 글은 낙천선생 배신공의 유집이다. 지금 공이 돌아가신지 200여 년이
지났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저술이 이와같이 영성하니 이른바 천분에 십, 백분에 일이 남아있다는 말과 같다. 도대체 어디를 따라야 공의 조예의
깊이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공은 일찍이 남명 조식선생을 스승으로 섬겼고, 또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지결을 들었으니,
연원의 성대함이라 할 수 있다. 명종과 선조의 밝은 세상을 만나서 군현들이 무리지어 나가서 벼슬할 만 하였으나, 시기가 나가서 행할 만 하면
행하고, 시기가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었으니 이것이 출처의 정도이다. 호령할 지위도 없고 모아 둔 복록도 없었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즐거워 따랐다.
나가서는 태학에서 공부하고 물러나서는 향교에서 공부하였다. 항상 집안에는 신발이 넘쳐 났고, 공의 가르침을 한 번 받으면 모두 법도에 맞게
행동하였고 말이 단정하고 행동이 근실하였다. 그래서 물어 보지 않아도 선생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이것은 자기를 이루고 남을 이루어준
공로이다. 이 몇 가지는 공의 본말을 적은 것이니, 어찌 반드시 많아야 하겠는가? 지금 미수 허목이 쓴 공의 행장을 통해 보건데, 공이 이
학문에 실마리를 구하고 힘을 씀이 오직 선악의 사이를 살피는데 있었다. 대체로 대학 제6장 장구를 읽고서 그 기미를 발휘한 것이다. 선악의
사이를 살폈기 때문에, 의리와 공사를 분별하는데 확실하게 흑백을 쉬이 구분하는 것 같았다. 자기를 행하는 데는 단정하고 바르게 하였으며, 남을
대할 때는 단정하고 이치로 하였으니, 이것이 낙천선생이 되는 까닭이다. 옛날에 이른바 ‘진실로 알기를 구하지 않아도 또한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아 사람 중에 누가 대학을 읽지 않겠는가 만은 공처럼 힘쓸 곳을 아는 사람은 적다. 훗날 이 문집을 읽는 사람은 너무 소략하다고 병폐로
여기지 말고 공이 배운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 여강 이종상은 발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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