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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편 -黙齋逸稿 -

 

 黙齋先生逸稿序

先聖世家 別書門弟子七十七人 叔魚子石 只記歲年 冉季以下 只記名姓 後世擧知其賢 以親及聖門 非賢不能也. 其得聖師一言之及者 尤賢可知也. 陶山及門諸賢 有雨化成德之分 而皆以師門所稱詡定之 如黙齋朴先生 亦得其稱詡之重者也. 始之卜居 書溪漁 爲密邇家墻問業便也. 凡所聞於師席者使如滴水滴凍 而黙以扁齋寔遵師訓 妙悟自得之旨 尤契之深矣. 及其築亭於堯聖山下 名以擊壤 則先師爲寫楣額 因贈之以詩 托興梅筠 復題其尾 以證堯時老人之義 而有怡神養性之語 則居靜頤閒之工爲師門所賞可知 而終焉結之曰予嘗往來 期亭杖屨臨賞之勝 丁寧講受之蹟 又可想象得也. 所著擊壤稿一帙 失於兵燹 只有八詠 傳世間有殘缺 不幸甚矣. 後孫某某等 始乃收拾虧斷 僅得詩文數篇 附以諸碣及院享事實爲逸稿一卷 所謂存十一於千百 殆不成篇第也. 朴君章煥齎示不侫 其意若甚恨者. 不侫敬玩而復之曰 慈孫之爲恨 固也 知德傳信不係於文字之傳不傳 庸何傷乎. 求之本集而未備者 求之師訓 足矣. 今試擧其尤著者 則沈潛黙識 嘉實學也 優遊厭飫 許存養也 知君警策 推詡鄭重 梅筠待我 淸氣襲人而至若玆乎 老夫聖世逸民 分明熙皥氣像 下百世而尙 論者當於此 而得以比他聯篇累牘徒務鬪靡而無甚藉重者 其輕重果何如哉. 旣以是語朴君 因次其語 爲之序. 歲戊申 重陽節 後學 完山 柳必永謹序.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외에 따로 적은 문제자(門弟子) 77인 가운데 숙어(叔魚)1)와 자석(子石)2) 등은 단지 그 나이만 기록하고 염계(冉季)3)이하는 단지 이름만 기록하였으나, 후세 사람들이 모두 그들이 어질었음을 아는 것은 성문(聖門)에서 직접 매우는 것은 어진이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사(聖師)께서 한 마디 말이라도 언급한 이들은 더욱 어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도산(陶山)의 급문제현(及門諸賢)들에게는 우화(雨化)와 성덕(成德)4)의 구분이 있으니, 모두 사문(師門)에서 인정받고 칭찬받은 것으로 정해지는데 묵재(黙齋) 박(朴)선생 같으신 분은 역시 두터운 인정과 칭찬을 받으신 분이다. 처음 거처를 정하고 계어(溪魚)라고 한 것은 집 가까이에서 찾아 뵙고 여쭙기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무릇 스승이 계신 자리에서 들은 것은 물 한 방울 얼음 한 조각처럼 적은 것이라도 묵묵히 액자를 만들어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으므로 그 묘오자득(妙悟自得)의 뜻에 계합(契合)됨이 더욱 더 깊었다. 요성산(堯聖山) 아래에 정자를 지었을 적에 격양정(擊壤亭)이라 이름지으니, 바로 선사(先師)께서 직접 편액을 써 주시고 이어 시(詩)를 지어 주시었는데, 매화와 대나무에 흥취를 가탁하시고는 다시 그 말미에 ‘요(堯) 임금 때의 늙은이’이라는 뜻을 분명히 하시면서 ‘기쁜 마음으로 본성을 함양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렇다면 고요히 지내며 함양하는 공부는 사문(師門)에서 상찬(賞讚)되었음을 알 수가 있으며, 끝에 맺기를 ‘내가 일찍이 왕래하였다’고 하여 스승이 머물며 즐길 만한 승경(勝景)을 기약하였으니 간절하게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행적을 또한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저서 『격양고(擊壤稿)』한 책은 병란 중에 잃어버리고 단지 「격양정 팔영(擊壤亭 八詠)」만이 세간에 전해지는데 빠진 부분이 있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다. 후손 아무개 등이 비로서 손상되고 흩어진 것들을 수습해 겨우 시·문 몇 편에 묘갈명과 서원의 제향한 사실 등을 덧붙여 『일고(逸稿)』한 권을 만들었으니, 이른바 천백(千百) 가운데 열이나 하나를 보존한 것으로서 제대로 된 책의 순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박장환(朴章煥)군이 그것을 가져와 나에게 보이며 매우 한스럽게 여기는 듯 하였다. 내가 공경히 읽고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자손(慈孫)들이 한스럽게 여김이 진실로 당연하겠으나 덕(德)을 알고 믿음을 전하는 것이 문자의 전해지고 전해지지 못함과 관계가 없거늘 어찌 마음아파 하리오. 본집(本集)에서 구했으나 미비된 것은 스승의 말씀에서 구하면 충분하리라. 지금 그 두드러진 것들을 시험삼아 거론해 보면, ‘차분한 마음으로 묵묵히 이치를 안다[沈潛黙識]’는 것은 참된 배움[實學]을 가상하게 여긴 것이요 ‘여유있게 충분히 그 의미를 음미한다[優遊厭飫]’는 것은 존심양성(存心養性)함을 인정한 것이며, ‘그대의 깨우침을 안다[知君警策]’함은 높여 칭찬하기를 정중히 한 것이요, ‘매화와 대나무가 나를 기다린다[梅筠待我]’함은 맑은 기운이 사람에게 들어와 지극해진 것이로다. 노부(老夫)는 성세(聖世)의 일민(逸民)으로서 분명 환하고 태연한 [熙皞] 기상이 있어 백세(百世) 후에도 오히려 존숭되거늘 논한 바가 여기에 부합된다면 저 쓸데없이 길고 화려함만을 다툴 뿐 바탕이 될 만한 무게가 없는 글들과 비교해 볼 때 그 경중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이미 이러한 말을 박군에 해주고 이어 그 말을 글로 적어 서문을 삼는다. 무신(戊申)년 중양절에 후학 완산(完山)의 유필영(柳必永)5) 은 삼가 서문을 쓰노라.

1)공자(孔子)의 제자로 공자보다 29세 연하인 양전(梁鱣). 2)공자의 제자로 공자보다 53세 연하인 공손룡(公孫龍). 3)공자의 제자로 자(字)는 자산(子産)이다. 4)군자(君子)의 교육방법들로서 우화(雨化)는 제때에 내리는 비가 초목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이 하는 방법으로 안자(顔子)와 증자(曾子)가 이에 해당되며, 성덕(成德)은 덕을 이룩하게 하는 방법으로 염백우(冉伯牛)와 민자건(閔子蹇)이 이에 해당된다. 『맹자(孟子)』「진심장구(盡心章句)」상. 참조. 5) 유필영(1841~1924) 자는 경달(景達), 호는 서파(西坡) 관향은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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