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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편 -寒岡集 -

 

 五先生禮說分類序

節文乎天理 而儀則乎人事 散之爲三百三千之有秩 統之爲一身一心之所幹 未嘗斯須去乎君子之身 道德仁義以之而成 君臣父子兄弟以之而定 所以古之人 自視聽言動之近 遠之家鄕邦國之遠 無所不用其誠敬焉 然而常禮惟一 變禮萬殊 雖在昔博識之上 尙未免臨機滋惑 是非相眩 議論多岐 聚訟構嫌 至於擧天下而莫辨 積世代而留疑 其精微之難審 眞是之莫賭 果如是哉 天相斯文 五星重明 有若兩程先生涑水先生橫渠先生與夫晦菴朱先生輩出迭興 大道以闡 宣揭人文 以禮爲本 隨事副析 如指諸掌 大而宏章巨論 約而片言單辭 無非一循乎天則 曲盡乎人情 情深懇到 明白昭晰 其所以開牖乎後學之耳目者 豈但爲車之指南 燭之炳幽乎 惟是散編於文集語錄等書及諸經傳註 雖有意於尋考 渺然若滄海之求珠 倉卒急遽之際 其何能徧閱而拈出也 一旣放過而差了 則雖或追而有得 亦莫及於已誤矣 况或至於終始罔覺 率意做錯 明白定論 自昭昭於方冊之中 而我乃漠然 與之背馳而不省 豈不爲不幸哉 近世或有採摭成帙者 有曰喪祭禮錄 有曰朱門問禮焉 而皆只取朱子之書 亦不備焉 且門類不分 間見雜出 猶夫舊汗漫也 此余所以輒不敢自揣 而有此類輯之役 庶幾或有一分之助 而溫公書儀與本集 旣不得見 又僻處窮山 他書多不能廣考 其所分而門焉者 亦安能秩秩各從其類 得不爲具眼者所誚乎 至於旁採前後諸賢所論 間或附入 且於各門題下 略證古禮 或暫記事實 以便考據 亦未必盡然而有闕之者焉 初不敢爲廣播遠傳計 只爲我老境臨疑考證之便 而精力衰耗 取舍紊舛 則亦其勢之所不免也 書成近十年 置在亂稿中 近有士友輩圖欲淨寫 旣不敢辭 因敍其所爲本末 僭題首簡 若能深體五先生折衷之本意 而取正於朱黃通解之書 有以仰泝周孔之大原 則所以爲義之實 可以自得 所以本於太一者 可以黙會 而三綱五常之大體 其斯立矣 萬曆辛亥夏四月壬午 後學西原鄭逑序五先生禮說 旣訖類輯 人有見而問之者曰 爲五先生禮說焉 而朱子家禮尙不在編中 寧有說耶 諸先生之語 率多一時隨事問答 初非爲行禮節次 有爲而施敎 故或重複而繁蔓 或闕漏而疎脫 若使家禮隨門類入 則節目咸備 次第靡闕 亦可以據而行之 豈不爲禮家之完書哉 余謂言固然矣 余亦初有是意 亦嘗試入於冠婚等禮矣 旣又思之 所以爲此書者 實非有求多於古人 只緣諸書散載之言 殊不便於倉卒之考閱 故今姑爲抄集便覽地 若家禮之書 夫旣盛行於當世矣 家無不有 人無不講 今復取而編入 則豈不爲重複而煩猥者哉 况家禮旣爲一部成書 此書當不過考證羽翼而已 尤不合破彼而補此 此所以欲入而還止者也 今亦不敢强從人言 復慮他人之見而疑之 有司前詰 故輒錄其語 以見鄙意云 逑謹識


예(禮)라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형상화하고 인간의 일에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분산시키면 예의(禮儀) 삼백 가지와 위의(威儀) 삼천 가지가 질서정연하고, 한군데로 집약하면 모든 사람들 각자의 몸과 마음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서 잠시 잠깐이라도 군자의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도덕(道德)과 인의(仁義)가 이것으로 인해 이루어지고 군신․부자․형제 상호간의 구분도 이것으로 인해 정해진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등 신변의 가까운 행위에서부터 멀리 한 가정과 고을 그리고 나랏일에 이르기까지 예(禮)의 본질인 성(誠)과 경(敬)을 다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례(常禮)는 하나이지만 변례(變禮)는 그 가짓수가 무수하기 때문에 비록 저 옛날의 박식한 선비라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만나면 의심스러워 옳고 그른 것이 서로 혼동되고 여러 사람의 말들이 분분하여 서로 헐뜯고 증오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온 세상 사람의 지혜를 모아도 그 시비를 분간하지 못하고 여러 세대를 내려가면서 의문을 남기기까지 하니, 예(禮)라는 것은 정밀하여 알아보기가 사실 이처럼 어렵고 또 참되고 옳은 본색을 보기도 이처럼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행히 하늘이 사문(斯文)을 도와 어두운 밤하늘에 다섯 개의 별이 그 빛을 다시 발산하게 하였으니, 이를테면 두 정 선생(程先生 : 程顥․程頤), 속수 선생(涑水先生 : 司馬光), 횡거 선생(橫渠先生 : 張載), 및 회암(晦庵) 주 선생(朱先生 : 朱熹)이 번갈아 세상에 나와 큰 도(道)가 밝아졌다. 사람의 도(道)를 선양하되 예를 근본으로 삼고 사안에 따라 분석하기를 손바닥을 가리키듯 환하게 해 놓았다. 크게는 사안이 큰 문장과 논단에서부터 작게는 한두 마디의 단편적인 말까지 오로지 하늘의 법을 따르고 사람의 정서를 구현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것이 다 정밀하고 깊으며 철저하고 분명하였으니, 후학의 눈과 귀를 열러 준 것으로 말하면 어찌 남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지남거(指南車)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 주는 그 정도뿐이겠는가. 다만 아쉽게도 그와 같은 말씀들이 문집(文集)과 어록(語錄) 등 책들과 여러 경전의 주석(註釋)에 흩어져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을 찾아보고 싶더라도 바다에서 진주를 찾는 것처럼 막연하다. 다급한 비상시에 어찌 두루 열람하여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한번 이미 그 때가 지나가 버리고 일이 잘못된 뒤에는 혹시 나중에 그 자료를 찾아내더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는데, 더구나 영영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경솔하게 계속 잘못을 되풀이하기까지 한다면 되겠는가. 분명한 정론이 서책 속에 환히 밝혀져 있는데도 자신은 막연히 그와 배치되게 행동하면서도 모른다면 이 어찌 불행이 아니겠는가. 근세에 간혹 그 기록들을 주워 모아 책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어 『상제례록(喪祭禮錄)』이니, 『주문문례(朱門問禮)』니 하는 것이 나오긴 하였으나 이것은 다 주자(朱子)의 글만 취한 것으로서 완비되었다 할 수 없고, 게다가 부문이 갈라지지 않아 서로 비슷한 성격의 사안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나옴으로써 잡다하고 엉성하기는 예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곧 내가 감히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분류 편집하는 이 일을 하게 된 이유이다. 이제 그런대로 이 분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게는 되었으나 온공(溫公 : 司馬光)의 『서의(書儀)』와 그의 본집(本集)을 보지 못했고 또 외진 산골에 있는 처지라서 기타 다른 글을 대부분 두루 상고하지 못했으니, 사안의 성격에 따라 분류해 놓은 것이 또 어찌 질서정연하게 제대로 되어 안목을 지닌 자의 비방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후의 기타 제현이 논한 말씀을 곁들여 채집하여 간혹 첨부하기도 하고 아울러 각 부문의 제목 아래 대강 옛 예를 방증으로 제시하거나 혹은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살펴보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부문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빠진 곳도 있다. 처음에는 감히 널리 전파하고 후세에까지 전해 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늘그막에 무슨 의문이 나는 일을 만나면 고증하기에 편히 하자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정력이 약하여 취사선택에 두서가 없어 어지러우니 이 또한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가깝도록 초고 상태로 잡다한 글 속에 함께 놓아두고 있었는데, 요즘에 와서 사우(士友)들이 그것을 손질하여 정서하기를 원하므로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이것을 만든 전말을 서술하여 분수 넘게 서문을 쓰게 된 것이다. 독자들이 만일 다섯 분 선생이 준칙을 세운 본의를 깊이 이해하고 주황(朱黃 : 朱熹와 黃榦)이 편찬한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서 정도(正道)를 취해 표준으로 삼아 저 위로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큰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이른바 ‘예(禮)는 의리의 기본 법도이다’는 뜻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고, 또 이른바 ‘예는 그 근거를 천지의 근원에 두고 있다’는 뜻을 깊이 알 수 있게 되어 삼강오륜의 큰 근본이 서게 될 것이다. 만력(萬曆) 신해년(1611) 4월 임오일에 후학 서원(西原) 정구(鄭逑)는 서문을 쓰다.
다섯 선생의 예설(禮說)을 이미 분류하여 편집을 마친 뒤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묻기를, “다섯 선생의 예설이라고 했는데 주자의 『가례(家禮)』는 오히려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 선생들의 말씀은 대부분 한때 어떤 특별한 사안에 따라 문답한 것으로, 애초에 예(禮)를 행하는 절차를 위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침을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복되어 복잡하기도 하고 누락되어 엉성하기도 합니다. 만일 『가례』를 부문에 따라 유별로 끼워 넣는다면 항목이 다 갖추어지고 차례도 빠진 것이 없이 이 책을 근거로 삼아 예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예가(禮家)의 완전한 책이 되지 않겠습니까.”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그 말은 사실 일리가 있습니다. 나도 처음에 그 생각이 들어 일찍이 그 내용을 관혼(冠婚) 등의 예(禮)에 한번 첨부해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또 생각하니, 이 책을 만든 이유는 사실 옛사람의 글보다 그 양을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여러 책 속에 말씀이 산재해 있어 급작스럽게 찾아 열람하기에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지금 우선 그것들을 뽑아 모아 열람하기에 편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가례』로 말하면 이미 당대에 성행하는 것으로서 어느 집이든 없는 집이 없고 어느 누구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을 다시 취하여 편입한다면 어찌 중복되어 너저분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가례』는 이미 한 부의 책이 되어있고 이 책은 예를 고증하고 도움을 주는 용도에 지나지 않으니, 더더욱 저것을 망가뜨려 이것을 보충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이것이 『가례』의 내용을 첨부하려다가 그만둔 이유입니다.”라 하였다. 지금도 감히 그 사람의 말을 억지로 따를 수 없는 심정이다. 앞으로 혹시 다른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앞서 그 사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에 그 대화 내용을 기록하여 나의 생각을 밝혀 두는 바이다.
정구는 삼가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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