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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편 -聚遠堂集 -

 

 聚遠堂曺先生文集序

有子有言曰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歟. 夫仁者 與天地爲一心 萬物爲一體 長四德而統萬善 非知道者 不能言 惟有子遊於孔氏之門 獲聞其大道 體之心而驗諸行. 故語其本而以孝悌二字當之 其旨畧而所包者大矣. 今聚遠堂曺先生 芝山先生之兄也 未成童而請學心經于退陶夫子 盖是峕先生已通小學孝經等書. 其天兮絶粹 所學儘實底 至以有子孝悌爲仁之本之語 爲一生眞諦力行之資. 則豈非早親有道 益發其粹而實者 見得仁體之所以大孝悌之所以本 眞實如此而沛然行之者乎. 是其在家而行諠著 在朝而望實隆 未折號而 聖上已知爲孝子. 奇文憲之筵陛箚奏 歷擧文成文穆之理學禮學 而幷及先生之孝. 則於是乎 先生之大本 已立矣 道之生 孰將禦焉. 以之事君則移孝而爲忠 以之莅民則興孝而興悌 其問學之正 文章之盛 有足以崇彛敎而獎儒風矣. 矧乎關西俄頃之化. 能使千里負土築成一邱. 則仁之所施 詎有涯限 而何天之不位以年 未能大其化 而博其利. 是氣數所使 道亦無如之何耶. 抑將編之三䌊繪畫而傳其事 棹楔而表其行 謂可以施諸百世 使斯民歸于仁耶. 苟如是也. 先生之心性一書 已經函丈問辨 塤箎切劘 卽吾道之所寄也 其將留布宇宙羽翼斯文 而胡使之散佚而不能收也. 天意實未可知已. 第以若干詩文之見載遺集者言 冲澹簡潔 倣雅頌之韻致 典雅懇側 得訓謨之體裁. 㝡其死節者壽一編 辭嚴而義直 合殺了千古爲人臣苟活底心 若使善觀者觀之 可知從性情本源中出來 亦足爲吾儒家載道之器矣. 是惡可無傳於世 又何患其傳者少也. 日先生後孫漢奎甫 屬余以勘校之役 屢辭不獲 謹卒業而序其末以歸之. 前典樂正 眞城 李彙寧 謹序.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겨난다. 효성스러움과 공손함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 하였다. 인(仁)이란 천지와 한 마음이 되고 만물과 한 몸이 되며 사덕(四德)의 음뜸으로서 모든 선(善)을 포괄하는 것이니, 도(道)를 아는 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유자가 공자의 문하에서 노닐며 그 큰 도리를 들어 마음으로 체득하고 행실에서 징험하였다. 그러므로 그 근본을 말하면서 효제(孝悌) 두 글자로써 해당시켰으니 그 뜻은 간략하나 포함하는 바는 큰 것이다. 이 취원당 조 선생은 지산(芝山)선생의 형으로서 채 성동(成童)이 되기 전에 퇴도(退陶)선생에게 『심경(心經)』을 배우기를 청하였는데, 그 때에 선생은 이미 『소학(小學)』․『효경(孝經)』등을 통효(通曉)하였었다. 타고난 천품이 매우 순수하고 배운바가 모두 참되더니 유자의 “효제(孝悌)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는 한 마디로써 일생토록 지켜야 할 참된 도리요 힘써 행하여야 할 바탕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찌 일찍이 도(道)가 있는 자에게 직접 배워 그 순수하고 참된 것을 더욱 개발시켜 인체(仁體)의 큼과 효제(孝悌)의 근본됨을 그와 같이 진실되게 알아 굳세게 행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선생이 집안에서는 우애로운 행실이 드러났고 조정에서는 명망이 진실로 두터워 과거에 급제하기도 전에 성상(聖上)께서 이미 효자임을 아셨었다. 기문헌(奇文憲)공이 경연에서 올린 글에서 문성공(文成公)과 문목공(文穆公)의 이학(理學)과 예학(禮學)을 하나 하나 거론하면서 아울러 선생의 효성스러움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에 이미 선생의 큰 근본은 이미 확립되었던 것이니 도(道)가 생겨나는 것을 누가 장차 막을 수 있으리요! 도로써 임금을 섬기면 효가 옮겨가 충(忠)이 되고 도로써 백성들에게 임하면 효를 일으키고 제(悌)를 일으키리니, 그 학문의 바름과 문장의 성대함은 떳떳한 가르침을 높이고 유풍(儒風)을 권면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하물며 관서(關西)지방을 모두 교화시키는 정도이겠는가. 능히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흙을 짊어져 쌓아 하나의 언덕을 이루게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仁)이 베풀어지는 바가 어찌 한계가 있었으리요마는 하늘은 어찌하여 장수(長壽)하지 못하게 하여 그 교화를 크게 하지 못하고 그 이로움을 널리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인가! 이것은 기수(氣數)가 주관하는 것으로 도(道)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장차 편집하고자 하여 세 차례나 다듬어 그 일을 전하고 정려(旌閭)을 세워 그 행실을 표장(表章)하니 백세(百世)토록 전해져 이 백성들로 하여금 인(仁)으로 돌아오게끔 할 수 있을까? 진실로 그러할 것이다. 선생의 심성(心性)에 관한 한편의 글은 이미 함장(函丈)의 문변(問辨)을 거쳤고 형제간의 절차탁마[塤篪切劘]속에는 오도(吾道)가 깃들여 있으니 장차 세상에 유포(留布)되어진다면 사문(斯文)에 도움이 될 것인데 어찌하여 흩어져 거두어들일 수 없게 하는 것인가. 하늘의 뜻을 진실로 알 수가 없구나. 단지 유집(遺集)에 실려있는 약간의 시문들만을 가지고 말해 보더라도 충담간결(沖澹簡潔)하여 아송(雅頌)의 운치와 비슷하고 전아간측(典雅懇惻)하여 훈모(訓謨)의 체재를 지니고 있다. 「사절자수(死節者壽)」라는 한 편은 말이 엄정하고 의리가 곧아 남의 신하된 자가 구차스럽게 살려고 하는 마음을 영원토록 없애기에 적합하니, 만일 선관자(善觀者)로 하여금 살피게 한다면 그 글이 성정(性情)의 본원(本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서 또한 족히 우리 유가(儒家)의 도를 싣는 그릇이 되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세상에 전해지지 않아서야 되겠으며, 또 어찌 그 전해지는 것이 적음을 근심하겠는가. 어느 날 선생의 후손 한규(漢奎)씨가 나에게 교감(校勘)의 일을 부탁하기에 여러번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삼가 일을 마치고 끝에 서문을 써서 보낸다. 전(前) 전악정(典樂正) 진성(眞城) 이휘녕(李彙寧)은 삼가 서문을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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