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양보음>

 ▣ 梁父吟

諸葛亮

 

步出齊城門

보출제성문

 

里中有三墳

이중유삼분

 

問是誰家墓

문시수가묘

 

力能排南山

역능배남산

 

一朝被讒言

일조피참언

 

誰能爲此謀

수능위차모

 

遙望蕩陰里

요망탕음리

 

正相似

유류정상사

 

田疆古冶氏

전강고야씨

 

文能絶地紀

문능절지기

 

二桃殺三士

이도살삼사

 

相國齊晏子

상국제안자

 

 ▶ 제갈 량 諸葛亮 [181~234] : 자 공명(孔明). 시호 충무(忠武).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하여 사관(仕官)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207년(建安 12) 위(魏)의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劉備:玄德)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써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이듬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 ·익주(益州)를 유비의 영유(領有)로 하였다. 그 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웠고, 221년(章武 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는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여 재차 오(吳)와 연합, 위(魏)와 항쟁하였으며, 생산을 장려하여 민치(民治)를 꾀하고, 윈난[雲南]으로 진출하여 개발을 도모하는 등 촉(蜀)의 경영에 힘썼으나 위(魏)와의 국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국세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위의 장군 사마 의(司馬懿)와 오장원(五丈原:陝西省 톱縣)에서대진 중 병몰하였다.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졌다.

 

▶ 梁父吟(양보음) : 양보의 노래, 양보는 山東省에 있는 조그마한 산 이름. 이 시는 제나라 재상인 안자가 간계로 세 용사를 처치한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제갈공명은 이 작품을 자주 노래하곤 했다고 한다.

▶ 齊城門 : 제나라 수도의 성문. ▶ 遙(요) : 멀다. ▶ 蕩陰里 : 山東省 臨緇縣 ▶ 墳(분) : 무덤. ▶ (류류, 루루) : 연이은 모양. ▶ 地紀(지기) : 地維, 地紘(지굉), 大地를 유지하고 있는 동아줄, 땅을 성립시키고 유지하는 자연의 힘을 말한다. 여기서는 문장이 일세를 震動케 한다는 뜻으로 썼다. ▶ 讒(참) : 참소하다. ▶ 二桃殺三士 :  춘추(春秋) 시대,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에게는 공손접(公孫接), 전개강(田開彊), 고야자(古冶子) 등 세 명의 장군이 있었다. 그들의 용맹은 온 제나라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제나라 재상 안영(晏 , 字는 平仲, {晏子春秋} 著)이 길에서 그들 세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매우 오만하여 안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안영은 매우 화가 나서, 제나라 경공을 찾아가 말했다. "왕의 측근에 있는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 이들 세 명의 장군은 자신들의 공만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에 해를 끼칠 화근이오니, 일찍이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나라 경공이 물었다. "그들의 무예가 너무 출중하여, 밝혀놓고 잡을 수도 없고, 몰래 죽일 수도 없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겠소?" 안영이 말했다. "그들 세 사람에게 두 개의 복숭아를 보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공로의 크기에 따라 복숭아를 먹으라고 하십시오 그들은 자기의 힘만을 믿지 장유(長幼)의 예의 같은 것은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에 경공은 사람을 시켜 그들에게 두 개의 복숭아를 보내고, 그들에게 각자의 공로에 따라 복숭아를 먹으라고 했다. 공손접이 하늘을 쳐다보며 길게 탄식하였다. "안자(晏子)께서는 정말 지혜롭군요. 그 분께서는 경공으로 하여금 이러한 방법으로써 우리들의 공로를 비교해보시도록 하였으니 말이오. 나의 힘은 멧돼지도 이길 수 있으며, 호랑이를 잡을 수 있으니, 나의 공로로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소. 그러자 전개강이 복숭아를 낚아채며 말했다.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적들을 물리쳤으니, 복숭아를 먹을 자격이 있소."  고야자는 이미 두 사람이 복숭아를 차지해버린 것에 몹시 분노하였다. "나는 일찍이 군주를 수행하여 황하를 건넌 적이 있는데, 그때 말이 강 속의 큰 거북에게 물려 들어가버렸소. 나는 곧 물 속으로 뛰어들어 거꾸로 100걸음을 헤엄치고 다시 아홉 리를 흘러내려가 큰 거북을 죽이고 말을 찾아왔소. 당시 사람들은 나를 황하의 신이라고 불렀소. 공로를 따지자면 복숭아는 마땅히 내가 먹어야하오." 이어서 고야자는 칼을 뽑아 들고 나머지 두 사람과 싸우기 시작하였다. 공손접과 전개강은 자신들의 공로로 보아 죽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짓이 될 거라고 말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이에 고야자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복숭아를 차지하는 것이 인자하지도 의롭지도 못한 일이라 생각하고, 곧 자살하였다. (안자춘추(晏子春秋, 諫下)

 

 

 

(해석) * 제나라 성문을 걸어 나가,   멀리 탕음리를 바라보니, 마을 가운데 세 무덤 있어,  나란한 것이 아주 서로 비슷하네. 누구 집 무덤이냐 물었더니, 전개강, 고야씨라네.  힘은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문장은 땅 끈을 끊을 만하네.  하루 아침에 참언을 입어, 두 개 복숭아로 세 용사를 죽였네.  누가 능히 이 꾀를 내었던가?  제나라 재상인 안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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