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음주>

 ▣ 飮酒

陶淵明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此中有眞意

치중유진의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欲辨已忘言

욕변이망언

 

▶ 도연명 陶淵明 [365~427] : 자(字)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 잠(潛). 문 앞에 버드나무 5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장시성[江西省] 주장현[九江縣]의 남서 시상(柴桑) 출생.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晋)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진군참군(鎭軍參軍)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다.

 

▶ 飮酒 : 二十首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 내용은 음주와 무관하다.  ▶ 結廬 : 농막, 초가를 지음 ▶ 人境 : 人家, 마을, 俗世에 살면서 脫俗한다는 뜻임 ▶ 而 : 그러나 ▶ 車馬 : 수레와 말, 高官이나 官吏들이 타는 수레 소리, 벼슬에 뜻이 없으므로 官吏들이 찾아오는 일이 없음 ▶ 喧(훤) : 시끄럽다 ▶ 爾(이) : 그러하다, 然과 같음. ▶ 心遠地自偏 : 마음이 세속과 거리가 머니 비록 사는 땅이 사람 많은 한복판일지라도 그곳이 절로 편벽된 구석같이 조용하다는 뜻. ▶ 籬(리) : 울타리 ▶ 悠然 : 속세에 대한 욕심이 없이 한가롭게, 마음이 느긋한 상태 ▶ 見南山 : 見은 의식적이 아니라 절로 본다는 뜻. 南山은 廬山(여산)으로 九江(심陽) 남쪽에 있어 南山이라 함 ▶ 山氣 : 山色, 산의 景致 ▶ 日夕佳 : 저녁이 되자 더욱 아름다움. ▶ 此中有眞意 : 국화를 따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가을 황혼, 새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등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뜻. ▶ 辨 : 그 眞意를 분석해 말로 표현함.

 

 

 

 

(해석)

* 초가를 지어 마을에 살고 있으니

* 수레의 시끄러움도 없네

* 묻노니 그대는 어찌해 그럴 수 있는가

* 마음이 머니 땅이 절로 외지구나

*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서

* 고요히 남산을 바라보네

* 산의 기운 저녁이라 아름다운데

* 나르는 새들도 서로 짝지어 돌아가네

* 이런 속에 참된 뜻 들어 있으니

* 말로 표현하고자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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