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일기

   一八일에 홍서봉, 최명길, 윤휘 등에게 국서를 주어 적진에 보내니 용골대가 이르기를,
  "마부대가 다른 데에 갔으니 받지 못하노라."
하고 또 이르기를,
  "내일이나 모레 두 날 중에 싸우리라."
하였다.
  국서(國書)에 말하기를,
  "조선 국왕 모(某)는 대청국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께 상언(上言)하나니 엎드려 명지(明智)를 받으니 그 책하기를 엄절(嚴切)히 하며, 가르치기를 지극히 함이라. 추상(秋霜)이 늠렬(凜冽)한 가운데 양춘(陽春)의 뜻을 띠었으니 엎드려 읽음에 황감(惶感)하여 몸둘 곳이 없도다. 대국의 위덕(威德)이 멀리 더하고 모든 번방(藩邦)이 말씀을 한가지로 하여 천인(天人)이 돌아가는 바이고 큰 명(命)이 바야흐로 새롭거늘 소방이 십년 형제로서 도리어 득죄(得罪)함이 많으니 미치지 못할 뉘우침이 있는지라. 이제 원하는 것은 다만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옛 버릇을 한결같이 씻어버리고 나라를 들어 명을 받아 모든 번방에 비할 따름이라. 진실로 곡진히 구원하고 스스로 새롭기를 허한다면 문서예절(文書禮節)에 자연 응당한 규식(規式)이 있으니 강정(講定)하여 행함에 오늘날이 있다. 성에서 나오라고 하는 명은 진실로 어진 뜻이지만 포위된 것이 풀리지 않았고 황제의 노함이 바야흐로 성(盛)하였으니, 여기에 있어도 죽고 성에서 나와도 또한 죽을 것이다. 이러하므로 용기를 바라며 죽기를 결단하니 그 사정이 또한 섧도다. 소방의 정원(情願)이 이러하니 이것이 경계함이요 명령에 따름이라. 황제가 바야흐로 천지 생물(天地生物)로써 마음을 삼으니 소방이 어찌 사람 기르는 가운데 참예하지 못하겠는가? 황제의 덕이 천지같으니 감히 실정을 드러내 말하고 공경히 은혜를 기다리노라."
하였는데, 이는 이조판서 최명길이 지은 것이다.
  예조판서 김청음이 비국(備局)에 들어가 이 편지를 보고 손으로 찢고 실신통곡(失神痛哭)하니 곡성(哭聲)이 대궐 안에 사무쳤다.
  김청음이 이로 인하여 최명길에게 이르기를,
  "대감이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하시오?"
  명길이 잠소(潛笑)하며 말하기를,
  "대감이 편지를 찢었으니 우리는 당당히 줏으리라."
하고 종이를 낱낱이 주워 모아 붙였다.
  병조판서 이성구가 대로하여 이르기를,
  "대감이 전부터 척화(斥和)하여 국사(國事)가 이에 이르렀으니 대감이 마땅히 적진에 갔으면 하오."
  김청음이 대답하기를
  "내가 죽고자 했으나 자결하지 못했더니 만일 적진에 보내어져 죽을 곳을 얻으면 이는 그대의 은혜로다."
  말을 마치고 하처(下處)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고 이 날부터 밥을 먹지 않고 스스로 죽기를 기약하였다.
  一九일에 최명길과 윤휘가 적진에 가서 국서를 전했으나 종시(終始) 답서를 내어주지 않아 우상(右相) 이하가 그냥 돌아오니 참판(參判) 한여직(韓汝　)이 이르기를,
  "국서에 한 글자를 쓰지 않았으니 내 이미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노라. 한 글자는 실로 클 거(巨)자라. 이제 김공이 하처에 나갔으니 때를 타서 그 글자를 급히 써야 할 것이다."
  명길이
  "그 말이 옳다"
하고 [신(臣)]자 쓰기를 정하였다.
  전(前)대사간(大司諫) 윤황(尹煌)이 병들었다고 하고 문밖에 나오지 않으며 매일 저녁에 그 아들 윤문거(尹文擧)를 불러서 묻기를
  "화친하는 일이 어찌 되어 가는 지 사람이 장차 죽겠구나!"
하니 윤황은 본래 척화하던 사람으로 나중에 이런 말을 하니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이 날 우상(右相) 이하가 적진에 갔을 때 용골대 등이 이르기를
  "대병(大兵)을 제도(諸道)에 보냈고 부원수(副元帥)가 잡히고 강화도가 함몰(陷沒)하였다." 하니 위협하는 말이었다.
  성 안에 있던 조관(朝官) 중에 병들어 죽은 사람이 두어 사람 있었다.
  二○일에 큰 눈이 내리고 큰 바람이 불다.
  우상과 명길, 윤휘가 적진에 가서 답서를 받아오니 답서에 이르기를
  "대청국 관온인성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조유(詔諭)하노라. 네가 하늘을 어기고 맹세를 저바린 까닭으로 짐이 혁연(赫然)히 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치니 바야흐르 싸울 뜻이 없더니 이제 네가 외로운 성에서 고단하여 짐이 조서를 내려 절책(切責)함을 보고 이에 죄를 뉘우치니 짐이 너를 사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라 함은 힘이 너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명하여 출성(出城)하여 짐을 만나라 함은 첫째는 네가 성심으로 항복함을 보려고 함이요, 또 하나는 네게 은혜를 베풀어 다시 나라를 보전하게 하고 군사를 돌이켜 인심(仁心)을 천하에 보이려 함이라. 만일 게교(計巧)로 너를 달랬다고 한다면 짐이 바야흐로 천명을 받들어 사방을 다스리니, 정히 너희 죄를 사하여 남조(南朝)에서 바람으로 삼으려 함이라. 만일 궤휼(詭譎)로 너를 잡을 것 같으면 천하에 큰 것을 다 능히 궤휼로 얻으리라. 네 만일 의심하여 출성하지 않으면 지방을 다 짓밟고 생영(生榮)이 다 진흙이 될 것이니 잠시도 머물지 못하리라. 네가 우두머리로 도모하여 맹세를 저바린 신하를 짐이 처음에는 다 죽이려 하였는데 네 이제 과연 출성하여 명(命)에 돌아온다면 우선 우두머리로 도모하던 두세 사람을 묶어 보내라. 짐이 당당히 효시(梟示)하여 뒷사람을 경계하리라. 짐이 서침(西侵)할 큰 계교를 그르치게 하고 너의 생영을 수화에 빠뜨린 것이 이 사람이 아니고 누구인가? 네가 만일 출성하지 않으면 아무리 빌어도 짐이 듣지 않으리라"
하였다.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척화신과 함께 죽을지언정 어찌 가히 묶어서 보내리오!"
  동궁이 여러 신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자네들 때문에 우리 집이 다 죽게 되었네"
하시니 여러 신하들이 할 말이 없었다.
  二一일  평명(平明)에 우상 이하가 적진에 가서 국서를 전하고 저녁에 다시 나아가 답서를 받으려고 하니, 출성하는 것과 척화신을 잡아 보내는 일을 허락하지 않아서 적들이 대로하여 국서를 그저 보내고 답하지 않았다.
  그 국서에 쓰기를,
  "조선국왕(朝鮮國王) 신모(臣某)는 삼가 대청국 관온인성황제 폐하께 상서(上書)하노니 신(臣)이 하늘에 죄를 얻어 멀지 않은 장래에 망하리라. 비록 사정이 급박(急迫)하여 여러번 글을 올려 스스로 새롭기를 구하나 실로 감히 기필(期必)치 못하였더니, 이에 은지(恩志)를 받들어 전죄(前罪)를 다 버리고 추상같이 엄한 위엄을 눅이고 양춘(陽春)같이 어진 덕을 펼쳐 장차 동방 수천 리의 생영을 수화 중에서 벗어나게 할지라.
군신부자(君臣父子)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은혜 갚을 바를 알지 못하나, 신이 민박(憫迫)한 사정이 있어 폐하를 위하여 베푸나니, 동방 풍속이 좁고 예절이 가찰(苛察)하여 그 임금의 거동이 조금도 예사롭지 않음을 보면 놀라서 서로 보며 괴이한 일로 여기나니, 만일 풍속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마침내 나라의 기강(紀綱)을 세우지 못하리라.
오늘날 만성백관(萬姓百官)과 모든 군민(軍民)이 사세(事勢)가 위박함을 보고, 명(命)에 돌아가자는 의논의 말은 한결같으나 다만 출성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고려 적부터 없던 일이라고 말하면서 죽기를 결단하여 반드시 출성하여 못하리라 하니, 만일 대국이 독촉하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나중에 얻는 것은 불과 주검이 쌓인 빈 성일 따름이라. 이제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조만간 죽을 줄 아는데도 오히려 이러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옛부터 나라가 망하는 것은 구태여 적국에 있지 않으니, 비록 폐하의 은덕을 입어 다시 나라를 세우더라도 지금의 인심(人心)을 볼진대 반드시 즐겨 임금으로 삼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신(臣)이 크게 두려워하는 바이요, 또한 폐하가 불쌍히 여기는 본심(本心)도 아니다. 폐하의 뇌정(雷霆) 같은 군사로써 깊이 천 리에 들어와 두 달이 못되어서 그 나라를 바르게 하고 그 백성을 다스리니 천하에 기특(奇特)한 공(功)이요, 전대(前代)에 없던 바이니, 어찌 구태여 출성하기를 기다려 이겼다고 하겠는가. 이기지 않은 것은 것이고, 또 성을 치는 것은 죄를 치는 것인데 이제 이미 항복했으니 성을 무엇에 쓰겠는가!
척화하던 여러 신하의 일은 소국(小國)의 옛 사대간(司臺諫)이며 간쟁(諫爭)하기를 주장한 이들인데, 지난날의 일이 잘못되어 소국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모두 그들의 죄이다.
지난해에 이미 적발(摘發)하여 죄를 주어 내쳤으니, 이제 비록 황제의 명이 있으나 여러 신하의 본정이 다소 편벽(偏僻)되고 어두워 천명을 알지 못하여 떳떳함을 지키려 함이라.
이제 폐하가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로써 천하를 풍동(風動)하니 이 무리를 마땅히 용서할지라. 엎드려 생각하니 폐하의 큰 도량이 천지와 같으니, 이미 임금의 죄를 사(赦)하며 이런 소신(小臣)들은 다만 소방에 맡겨 다스림이 더욱 큰 덕(德)이라. 신이 이미 폐하의 위엄으로 구함을 입은 까닭으로 성심(誠心)으로 친(親)하고 추종하여 먹은 마음을 다하여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드리노라."
하였는데 이는 최명길이 지은 것이다.
  임금이 명길과 대제학(大提學) 이시직(李時稷)에게 다시 짓게 하니, 비록 명길은 글을 쓰지 않았어도 글뜻은 다름이 없으니, 이시직이 자기가 글을 쓰지 않은 까닭으로 명길을 공치사(功致辭)하며 스스로 높은 체하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는다.
  이 때에 이조참판(吏曹參判) 정온(鄭蘊)이 국서에 [신하]라 칭함을 보고 분통(憤痛)하여 상소하니, 원래 정공(鄭公)은 영남 사람으로 남인(南人)의 색목(色目)이 있고 역적 정인홍(鄭仁弘)의 허명(虛名)이 한창 성(盛)할 때에 공(公)이 인홍의 사악(邪惡)함을 모르고 가까이 문인(門人) 중에 들었다가 인홍이 하는 일이 점점 패악(悖惡)하고, 광해군(光海君)이 간신(奸臣)의 말을 믿어 대비(大妃)를 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대비의 품에서 빼앗아 교동(喬桐)에 귀양을 보냈다가 마침내 죽이니 천지간에 대변(大變)이었다.
  정공은 호걸이므로 인홍과의 관계를 끊고 광해군에게 상소하여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인륜을 지키고 대의를 밝히니, 역적들이 대노하고 광해군이 살피지 못하여 제주도(濟州島)에 안치(安置)하였는데, 지금의 임금이 반정(反正)하심에 공을 불러 크게 쓰시어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고, 이 때 호종(扈從)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었다가 도적에게 칭신(稱臣)함을 보고 분완(憤　)하여 상소하니 그 소(疏)에 이르기를,
  "복이(伏以) 신(臣)이 그윽히 듣자오니 어제 사신이 적진에 갔을 때 신하로 칭하겠다고 아뢰었다는 말을 들었사오니 이 말이 진실로 그러합니까? 진실로 그러하면 반드시 이는 명길의 말이라. 신이 듣자오니 마음과 쓸개가 다 터지고 목이 메어 능히 소리를 이루지 못하겠습니다. 전후(前後) 국서가 모두 명길의 손에서 나오니 그 말이 극히 낮아 진실로 항복하는 편지였지만 오히려 [신(臣)]자는 쓰지 않았는데 이제 신하라 칭한 즉 국신의 명분이 분명히 정해졌사오니 장차 명령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저들이 만일 명령하여 나서면서 항복하라 하면 전하께서 장차 북녘으로 가시겠으며, 복색(服色)을 고치고 술잔을 바치라 하면 전하께서 장차 술잔을 바치겠습니까?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저들이 반드시 군신대의(君臣大義)로써 죄를 드러내어 칠 것이니, 그러면 나라는 이미 망한 것입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장차 어찌 하려고 하십니까? 명길의 뜻대로 하면, 한 번 칭신(稱臣)하면 포위를 풀 것이요, 임금을 편안하게 하리라 하지만 설사 이렇게 해도 오히려 소인의 충성입니다. 옛부터 천하의 국가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사느니, 바른 것을 지키고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 하물며 군신부자(君臣父子)가 성을 등 뒤에 두고 한번 싸우면 성을 지킬 도리가 없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와 중국이 부자의 은혜와 군신의 분의(分義)가 있으니 어찌 가히 배반하리오. 하늘에는 두 해가 없거늘 명길이 두 개의 해를 만들려 하고, 백성에게는 또한 두 임금이 없거늘 명길이 임금 둘을 만들려고 하니, 차마 이것을 한다면 무슨 일을 또한 못하겠습니까! 신이 힘이 약하여 비록 스스로 명길을 죽이지 못하나 차마 한자리에 서로 용납하지 못하니, 원컨대 전하는 명길을 내쫓아 그 매국(賣國)하는 죄를 밝히시고,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면 신에게 죄를 내리소서!"
하였다.
  날이 춥고 눈이 녹지 않으니 땔감을 얻을 길이 없어 개원사(開元寺) 행랑(行廊)과 고을 옥사(獄舍)를 헐었다.
  동궁(東宮)이 군관(軍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이미 자식이 있고 아우가 있으니, 내 어찌 한 목숨을 아끼리오. 내일 정하여 출성하고자 하니 이 뜻을 비변사(備邊司)에 일러라."
하시니, 비변사가 의논하여 세자는 출성을 마시라고 하고 척화하던 여러 신하를 잡아 보내도록 정하니 이조참판 정공이 또 찾아와 말하기를,
  "복이(伏以) 신이 실로 명길이 칭신하자 하는 말을 막으려 하였더니, 하룻 밤 사이에 문득 그 계교를 행하여 신이 미처 알지 못하여 죽기로써 다투지 못하오니 신의 죄가 큽니다. 임금의 욕됨이 극에 이르렀으니 신의 죄는 죽음이 마땅하나 오히려 자결(自決)하지 못하는 것은 전하께서 출성하실 뜻이 없으니 신이 어찌 감히 경솔하게 죽으리까?
다만 들으니 도적이 척화한 사람을 찾기를 심히 급히 한다 하오니, 신이 비록 먼저 척화를 주장한 사람은 아니오나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한 것은 신이 한 일입니다. 만일 신이 죽어 조금이나마 국가에 유익하다면 신이 어찌 감히 몸을 생각하고 임금을 위하여 죽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빨리 묘당(廟堂)에 명하여 신으로써 도적이 요구하는 것에 응하소서!"
하였다.
  二三일에 상후(上候)가 미령(靡寧)하시니 내국(內局)이 가져온 약재가 다만 정기산(正氣散) 열 첩 뿐이었다. 정기산 두 복(服)을 지어 진어(進御)하니 즉시 나으셨다.
  적이 척화신을 보내지 않는다고 화친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체부(體府) 중군(中軍) 신성인(申聖仁)과 남양군(南陽君) 홍진도(洪振道)와 구굉(具宏)이 밤새도록 적진에 왕래하여 가만히 의논하고 수원(水原), 죽산(竹山)의 장관(將官) 등과 훈련도감(訓練都監), 초관(哨官) 수백 명을 부추기어 먼저 체부에 가서 칼을 어루만지며, 궐하(闕下)에 가서 척화신을 내놓으라고 보채니 대개 수원부사(水原府使)는 구인후(具仁　)요, 죽산부사(竹山府使)는 구인기(具仁　)요, 군병(軍兵)은 구굉에게 속했고 신경진(申景　)은 훈련대장이었는데 오늘 이것이 모든 군병의 뜻은 아니었다.
  우상 이하가 국서를 가지고 적진에 갈 때 출성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전서(前書)와 같고, 척화신을 내어주기는 허락했으니 그 글에 이르기를,
  "척화제신(斥和諸臣)이 망령된 말을 하여 양국의 큰 계교를 그르치게 만드니 다만 폐하가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실로 소방(小邦)의 여러 신하들이 한결같이 분통해 하는 바이라. 부월(斧鉞)로 죽이는 것이 어찌 조금인들 아까우리오. 다만 수창(首昌) 대간(臺諫) 홍익한(洪翼漢)을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봉하여 저더러 스스로 대병(大兵)을 당하라 하였으니, 만일 벌써 잡히지 않았으면 반드시 평양에 있을 것이니 대군(大軍)이 돌아가는 길에 잡아매도록 맡기기 어렵지 않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길이 통하지 않아서 거처를 찾지 못하니, 폐하가 반드시 궁극(窮極)히 찾으면 군사가 돌아가는 날에 청컨대 사핵(査　)하여 그 사람을 찾아서 처분을 기다리겠노라."
하였다.
  김청음이 국서를 찢고 一八일부터 밥을 먹지 않아서 쌀 한 알도 입에 들어가지 않은 지가 엿새였다. 명재경각(命在頃刻)이었는데 척화신을 보내라 하는 거조(擧條)를 들음에 이 날부터 비로소 음식을 먹으며 이르기를,
  "내가 만일 죽는다면 반드시 적진에 가기를 피한다 할 것이다."
하였다.
  윤교리(尹校理: 尹集), 오수찬(吳修撰: 吳達濟) 두 사람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척화한 일을 자수(自首)하고 적진에 가기를 청하니 대개 김유(金　), 이성구(李聖九), 최명길 등의 의논이 척화제인(斥和諸人)을 다 잡아 보내려 함이었다.
  이날 밤 삼경에 도적이 서쪽을 치고 오경에 동편으로 망월봉(望月峯)을 침범하여 성 안을 침노하였다.
  二四일에 적이 남성(南城)을 침범하고 종일토록 행궁(行宮)을 향하여 방포(放砲)하니, 철환(鐵丸)이 사발같고 삼층 기와집을 뚫어서 한 자가 넘게 들어갔었다.
  二五일에 적이 서문으로 따라와 우리 사신을 불러 이덕형(李德炯), 이성구, 최명길이 적진에 가니 적장이 국서를 도로 내어주고 이르기를,
  "내일이면 돌아가려 하나니 만일 출성을 않으면 화친이 되지 못할 것이니 이 후로는 다시 오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종일토록 방포(放砲)하였다.
  二六일에 신경진, 구굉의 장수가 궐하(闕下)에 와서 척화신 내어주기를 청하니 대개 청음 등을 말함이었다.
  장관(將官)들이 정원까지 들어가 떠들기를 그치지 않으니 승지(承旨) 이행원(李行遠)이 이르기를,
  "대내(大內)가 멀지 않은 곳에서 어찌 감히 이렇게 하느냐!"
  군병 등이 눈을 부릅뜨고 대노하여 장차 난동을 부릴 형상을 하니 인심이 흉흉(洶洶)하였다.
  한 성을 지키는 군사 중에서 다만 신경진, 구굉의 군사가 그러하고, 다른 군사는 그렇게 하는 이가 없으니 사람들이 이를 알고 말할 사람이 있으므로 또 북성을 지키는 초췌(憔悴)한 모습의 군병들을 달래어 와서 요청했으나, 오직 서쪽 성을 지키는 대장 이시백(李時白)의 군사는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이 날 저녁에 홍서봉, 최명길, 김신국이 적진에 가니 용골대, 마부대 두 적장이 말하기를,
  "강화도를 함몰하고 대군 형제와 숙의(淑儀), 동궁 일행이 이미 통진(通津)에 이르렀고, 대군의 부인은 고을 사람으로 하여금 배행(陪行)하게 하여 모레면 여기에 이를 것이요, 경성(京城) 궁궐을 다 불지르지 아니하여 국왕이 출성한 후에야 다시 궐내에 들게 하고, 세자와 대군만 북녘으로 데려갈 것이니 너희들은 의심을 말라."
대군의 편지를 주며 이르기를,
  "너희들이 미덥지 않거든 이를 보라."
  성안의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았더니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이 편지가 분명히 대군의 친필이니 거짓말이 아니다. 종사(宗社)가 이미 망하게 되었으니 내가 할 일이 없구나."
  이로 인하여 출성할 계교를 정하였다.
  二七일에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별하지 못하다.
  이홍주(李弘胄), 최명길, 이성구 등이 국서를 가지고 저들의 진영에 가니 이는 출성을 허락하는 뜻이었다.
  "신이 성지(聖旨)를 받고부터 천지에 용납하는 큰덕에 감사하여 돌아가서 추종할 마음이 더욱 간절하되 신의 몸을 돌아보아 살피니 쌓인 죄가 산과 같은지라. 여러 날 머뭇거려 태만한 죄를 더하니, 이제 폐하(陛下)가 돌아갈 날이 있음을 들으니 일찍이 우러러 용광(龍光)을 바라지 못하

면 미(微)한 정성을 펴지 못하고 따라서 뉘우친들 어찌 미치리요? 신이 바야흐로 삼백 년 종사(宗社)와 수천 생영을 폐하께 의탁하나니 정리(情理)가 진실로 잔잉(殘剩)한지라. 만일 잘못됨이 있으면 칼을 당겨 자결함만 같지 못하니 엎드려 원컨대, 분명히 조서(詔書)를 내려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명(命)에 돌아갈 길을 열라."
하였다.
  이날 청음이 스스로 목을 매어 얼굴에 생기가 없어 거의 절명(絶命)케 되어 사람들이 풀어 놓았더니, 또 허리띠로 결항(結項)하여 또 풀어놓고, 이조참의(吏曹參議) 이경여(李景輿)와 공(公)의 자제들이 붙들고 지키어 자결하지 못하였더니, 그 이튿날 이후로 공을 적진에 잡아 보낼 의논이 있으므로 이 후로는 자결할 뜻을 그쳤다.
  이조참판 정공(鄭公)에게 동향(同鄕) 사람이 묘문(墓文)을 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날은 글을 지어 첩자(帖子)를 맡겨 그 사람에게 전하라 하고 또 글을 지어 이르기를,
  "임금의 욕됨이 이미 극(極)하였으니 신하가 어찌 죽기를 더디게 하리오. 연(輦)을 따라 나가서 항복함을 실로 부끄러워 하노라."
  글을 이렇게 짓고, 찼던 칼을 빼어서 스스로 배를 찌르니 유혈(流血)이 침금(枕衾)에 가득하여 사람들이 급히 가보니 오히려 죽지 않고 웃고 이르기를,
  "내 일찍이 글을 읽었으나 그 뜻을 몰랐도다. 옛 말에 이르기를 [칼날에 엎어져 죽는다] 하였으니, 엎드리면 오장(五臟)이 상하여 죽을 것을 누워서 찔러 죽지 않았노라."
하였다.(後略)

 <산성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