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검(黃仁儉)의 국법(國法) 준수(遵守)
이조판서(吏曹判書) 황인검이 젊었을 때에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었는데, 한 중이 극진히 그에게 시중들면서 시종 게으르지 않았고, 식량(食糧)이 떨어지면 쌀을 동냥해 와 밥을 지어 바쳤다. 황인검이 높은 벼슬을 하게 되어 전혀 서로의 안부(安否)를 묻지 못하다가, 후에 경상(慶尙) 감사(監司)가 되어 여러 고을을 순시(巡視)하던 도중 길에서 그를 만나 매우 반가워하고는 가마에 태워 따르게 하였다. 그 뒤 매일 밤 같이 자면서 정성(精誠)을 다하여 그를 아끼고 보살폈다. 어느 날 황인검이 그 중에게 말했다.
"내가 너의 도움을 받았으니, 네가 만약 환속(還俗)한다면 재산(財産)을 나누어 주어 풍족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또 면천(免賤)할 길도 찾아 보도록 하겠다."
중이 사양(辭讓)하며 말했다.
"제가 속세(俗世)에 있을 때 우연히 산골짜기의 새무덤 앞에 소복(素服)을 입은 미녀(美女)가 있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음심(淫心)이 일어 강간(强姦)하고는 살해(殺害)했습니다. 그 뒤 저의 죄를 깨닫고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옛날의 악행(惡行)의 속죄(贖罪)하고자 하는 맹서(盟誓)를 지금까지 지켜 왔는데 어찌 나으리의 후의(厚意) 때문에 한번 먹은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황인검이 마침 도내(道內)에 이러한 사건(事件) 기록(記錄)이 있어 삼십 년 가까이 범인(犯人)을 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그 연월일(年月日)을 물어 보니 꼭 들어 맞았다. 이에 탄식(歎息)하면서 말했다.
"내가 비록 너와 정분(情分)이 두텁다 하더라도 국법(國法)을 어길 수는 없구나."
그리고는 그를 잡아들여 법에 따라 처형(處刑)하고서 후히 장례(葬禮)를 치러 주고, 그의 무덤 앞에서 슬피 통곡(痛哭)하였다.
<국조인물지>
